일반 교우나 사회인들은「성직자」라고 하면 덕에 뛰어난 인격자! 탈속한 반천사를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런 분 중의 한 분이 요셉 이재현 신부이시다.
두드러진 문필가요 예수 성심 숭상운동에 유달리 열띠게 앞장 서신 성덕과 열성 어린 교육자. 다년간 용산소신학교 교장직에 계시면서 참된 목자 양성에 힘쓰다가 그 빛나는 영향력이 결실을 거두기도 하는 도중에 뜻 아니한 6ㆍ25 적변으로 납북되신 지 25개 성상. 지금은 북녁 어느 낯선 땅 속에 몸은 화토되었어도 성심 사랑에 활활 타오르던 뜨겁고 드맑던 영혼은 구만리 장천 그 위에서 주께 졸라 이 겨레의 내일에 줄이은 단비를 내리시게 하고 계실 것을….
내가 처음 그분을 뵈옵기는 1948년「위령의 날」오후 성가기숙생 10여명이 용산 성직자 묘지에 참배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옆에 자리한 소신학교(聖神高敎)를 방문한 때였다. 성심의 사도요 성인 사제라는 은근한 소문이 돌고 있는 문필가 교장신부(李在現)를 뵙는다는 데에 우리들 몇몇 문과생은 귀가 솔깃하였다.「연중묵상」 「매일묵상」「성시간」「성심과 사제」「천주와의 일치」「성심의 메시지」등등 이 땅 성직자 중에서 그 당시 독보적으로 많은 책을 집필하고 번역하신 문인 성직자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이날 충족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소슬바람에 교정의 누런 잎들이 궁구는 고요 속을 교무실로 다가가니 문 열고 접대하시는 청수한 얼굴에 점잖으신 검은 테 안경의 신부가 바로 그분임을 육감이 알으켜 주었다. 호심 같이 잔잔한 모습은 그 지성과 덕행의 그윽함을 느끼게 하여 대하는 이에게 안정감을 안겨주고 부드러우면서도 쏘는 듯한 맑은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를 들여다보는 분이라 직감케 하였고 무엇이고 해내고야 말 드높은 열정이 감돌고 있었다.
찾아간 뜻을 여쭈었더니 반겨 맞으며 몸소 신학교 성당을 안내하여 일일이 설명해 주셨다. 성당 조배와 김대건 신부 유해 친구가 끝난 뒤 조용한 빈 교실에서 우리들 한 명씩 선(?)을 보시는 것이었다.
이 분이 바로 성심 신부! 그 별명 그대로 병약한 몸을 무릅쓰고 매일 밤 같이 자정에 성시간(수난묵상)을 하신다는 장본인. 목소리마저 정다워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인자하면서도 인상적인 성대. 첫 대면에 십년지기를 느낀 우리들은 인생의 문턱에 나선 젊은이의 의문과 고민 그리고 신앙문제며 사생관에 이르기까지 연거푸 치졸하나 진지한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그 난제들을 헝클어진 실다발 풀어내는 편물사 모양 조리 있게 하나하나 풀어주는 그분의 말소리에 넋을 빼앗기며 그 어떤 후광 같은 것을 그려보았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그 진지한 열성과 성스러운 인격에 은연중 이쪽 마음이 송두리채 빨려들어 감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한마디로 성덕!거룩되이 타올라 그침없는 열성 그것이라 여겨졌다. 성성이란 완전한 극기와 자기 조절과 완전한 자기 희생 바로 그것임을 직감하였다. 그 후로도 그분과의 친교는 이어져서 대할 적마다 따스히 웃음 띠고 성심껏 깨우쳐주신 그 성의로 해서 내 인생은 이만큼에서 더 악화되지 않고 오늘까지 지탱되었는지도 모른다. 시침이 옮겨갈수록 그분이 내 안에 차지하는 영역과 비중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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