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 중에는 골동품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다. 같은 골동품이라도 가치가 있는 골동품이 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골동품이 있는데 우리 신자들의 경우는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것은 지극히 슬픈 현상임이 틀림없다』
1952년 성모승천대축일 날 17년간 봉직해온 개신교 목사직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평신도로서 여생을 전교와 교회 쇄신에 몸바친 서창제(토마스) 선생.
선생이 개종 후 가톨릭 신자의 일반적인 단점인 소극적 신앙생활을 개탄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하시던 이 말씀이 오늘에 와서 다시 생각키어지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이 다 그렇다든가 또는 그렇지 않다는가 하는 시시비비 이전에 그처럼 자신에 찬 행동하는 신앙인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데서 한 가닥 위안을 찾으려 함이라면 누가 나무랄런지.
사람은 몇 년간 몸담아온 직업을 바꾸는 데도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거늘 영원한 삶과 그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자신의 신앙에 극적인 전환을 이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개신교의 교육을 받고 자라 목사가 되어 근 20년간 봉직해온 개신교를 떠나 아무런 보수도 따르지 않는 평신도로 개종한다는 것은 역시 선생다운 용기의 소산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신념에서 우러난 개종은 행동을 갖게 했고 선생은 누가 뭐라든 스스로 신앙을 실천하며 남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나섰던 분이었다.
캠핑 가는 학생처럼 군화를 신고 주머니를 털었거나 여기저기서 모은 교리서를 잔뜩 짊어진 채 강화도로 결핵요양소로 복음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그 능란하고 설득력 있는 화술로 진리를 전파하던 서 토마스 선생.
선생은 가진 것은 없어도 누구의 마음도 그득히 채워줄 수 있는 복음을 안고 다니는 마음이 부유한 평신도였다.
선생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대자중(代子) 중 냉담한 이가 있다면 어디에 있든 찾아가 엄하게 꾸짖는 대부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그리스도는 의인(義人)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음』을 깨우치는 데 결코 게을러 본 일이 없다.
이러한 선생에게 본당 신부가 어떻고 회장이 어떻고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특히 신자들의 경제적 인색함에 대해선 교회의 인색한 신자가 어떻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의무를 다짐할 것을 역설하면서 그 자신은 병석에서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교무금을 걸르는 일이 없었다.
주교회의 공용어(公用語)위원회 위원으로 가톨릭 용어 개편작업에 참가,「연보」의「捐」자는「버릴 연」자인데『그럼 신자들이 버리는 돈으로 교회 살림을 꾸린다면 하느님은 버린 돈이나 받는 거지란 말인가』하고「예물」이나「헌금」으로 바꾸기를 주장하는가 하면 교회의 현대화와 사회 참여 평신도 재교육을 주장하던 선생이었다.
교단에 서면 박식한 국문학자이면서 본당에서 코흘리게 아동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인격과 신념의 행동인 故 서창제 선생.
한국 교회의 기라성 같은 많은 평신도 가운데 그분을 생각하는 것은 말 잘하는 신앙인보다 행동하는 신앙인을 더 필요로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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