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기증과도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이미 75년도에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공원이 이미 죽고 다친 전력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이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으로 영어의 신세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찰나였다. 현장수습의 신세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찰나였다. 현장수습의 급선무는 사상자 파악이었다. 직원들은 트럭을 몰고 온 운전수의 사체를 찾아 우왕좌왕했으며 동네사람들은 아이들 이름을 불러대며 허둥댔다.
피가 마르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초조한 초읽기가 얼마간 계속된 후 갑자기 환성과 박수가 터졌다.
행방이 묘연했던 운전수가 멀쩡하니 뛰어오고 아무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다고 확인되어서다. 나는 간부 한사람에 현장수습을 일러놓고 주저 않고 싶은 몸을 겨우 지탱해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느 사이엔가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직원이 앞에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렸다. 그날의 사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명피해 없이 끝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후레온 가스」라는 것은 원래가 여간해서는 폭발하지 않는 것이고 또 폭발한 예도 거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통에다 담을 때 그 충전량을 반드시 재서 출고하게 되어있으므로 운반과정에서 폭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의 경우는 담는 것도 허용치를 넘긴 것 같고 안양으로부터 장거리를 뜨거운 햇볕에 노출시킨 채 심하게 흔들거리며 싣고 옴으로써 통을 달구어 가스를 비동시켰음은 물론 장시간의 요동으로 휘저은 형국이 되었기 때문에 폭발 가능성을 일부터 만든 꼴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폭발의 소지를 만든 사람의 실수로나 관리 소홀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다만 신비스런 기적은 폭발의 시기(時機)와 장소에 은혜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운반 트럭이 본사 사무실이 있는 용산까지 오려고 한강대교를 지나 왔으므로 만일 삼사분 일찍 폭발했더라면 대로상에서 실로 엄청난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불과 몇 분 상관이지만 코스 중에는 승객과 행인, 상인들로 언제나 붐비는 용산시외버스 터미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두 번째의 불가사의한 기적은 도착해서 일어났다. 트럭이 본사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정오를 수분 남기고 있을 때였는데 신기하게도 그날따라 오전 내내 그곳에 나와 놀던 아이들이나 복덕방 노인들, 수도관을 접고 자르는 작업을 늘상 해오던 가게 주인 모두가 마치 누구의 대피지시라도 받은 듯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심지어 운전수조차 차를 세우고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사무실로 들어간 다음 바로 폭발, 목숨을 건지게 되었으니 이 어찌 천우신조의 덕이며 기적이 아니겠는가.
용산 일대가 들썩할 정도로 굉음을 낸 사고가 한사람 다치지도 않고 끝났다는 사실은 쉽사리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다. 혼자는 재수가 좋아서라고 할 것이고 또 어느 사람은 피나는 노력 끝에 갱생한 회사를 측은해한 신의 보살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순간의 이 회오리바람이 감격적인 행운이나 불행을 피했다는 안도 이상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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