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구라마리아회 회장인 신현분(마리아)씨는 지난 4월3일부터 18일까지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초청으로 「한ㆍ일ㆍ중 서예문화교류협회」회원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신씨는 문화교류 사업외에 중국의 나환우를 돕기 위한 구라사업의 추진을 모색키 위한 개인적인 목적도 아울러 띠고 갔다.
신씨는 영향력 있는 한 관리로부터 적십자사를 통한 구라사업의 추진 가능성을 타진하고 돌아왔다. 신씨는 신앙체험적 성격의 이 기행문에서 중국 간접선교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편집자 註>
4월3일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홍콩을 거쳐 다음날 중국 광동성 광주공항에 도착했다.
트랩을 내려서자 시설이 빈약한 후진국 공항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으나, 처음으로 공산국가를 방문한다는 흥분 때문인지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만 보였다.
광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가 『신현분 선생님이시지요?』라고 부르지 않는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낯설고 키 큰 젊은 남자가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낯설은 공산국가에서 누가 나를 알고 있을까」라는 두려운 생각에 얼떨결에『그렇습니다』고 대답했다. 혹시 북한측 사람이 아닐까하고 불안한 생각을 감추지 못하며 걸음을 총총재며 일행을 따라갔다.
이번 우리의 중국방문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문화교류를 위해 처음으로 문화예술인 단체가 초청된 것이다.「한ㆍ일ㆍ중 서예문화교류협회」(회장ㆍ김동리)의 임원15명이 「북경대학」과 천진서예단체의 초청으로「문화교류토론회」와「중국간자(簡字)문화세미나」참석차 방문한 것이다.
창립 17년의 역사를 가진 한ㆍ일ㆍ중 서예문화교류협회는 그동안 해마다 우리나라와 일본 및 대만에서 서예교류전을 열고 이를 통해 국제문화교류와 친선에 이바지 해왔다.
공작부 소속 유씨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은 「조선족」3세로 제주도가 선대의 고향인 양씨였다. 딱딱한 이북사투리를 썼으나 우리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동포를 만난 반가움에 금새 호감이 갔다.
처음 만난 낯설은 동포이지만 금방 피부에 와닿는듯한 뜨거운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동포애 앞에는 이념도 체념도 없었다.
그런데 아까 공항에서 내 이름을 불렀던 키 큰 남자도 함께 버스를 타지 않는가. 그는 명함을 돌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명함에는 중국대외우호협회 아주공작부 동남처 유씨(中國對外友好協會亞洲工作部 東南處 劉氏)라고 되어있었다.
「공작부」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렸다.
일행 중 누군가가 이를 묻자 후에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미리 준비해두셨는데도 인간의 얄팍한 판단으로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미련함을 부끄럽게 여겼다.
유씨는 북경대학을 나와 군에 입대, 우리나라의 중령급으로 제대했다고 한다. 군복무시 북한에 파견되어 5년간 통역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유씨의 부인은 중국인으로 여의사였다.
버스를 타고 광주시내 관광을 하는 동안 나는 창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국 풍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은 문화교류가 아니라 「구라사업」의 중국진출을 통한 간접선교의 모색이었던 까닭이다.
방중의 숨은 목적
내가 중국에서의 구라사업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구라사업과 관련한 한 심포지움에 참석하고부터였다. 일본 구라회 주최로 열린「동남아시아의 나병의 현황과 장래」란 주제의 심포지움에서 중국측 대표로 참석한 중국나병의 권위자 마해덕(馬海德)박사가 중국 나병의 현황을 소개한 것이다.
마박사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는 15만 명의 나환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측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음성환자까지 합치면 50만 명은 족히 될 것이란 얘기였다.
그 심포지움 이후 일본 「그리스도 구라협회」가 중국나환우 진료를 위해 중국으로 갔는데, 그들에 의하면 중국의 나환우 수용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으며, 그에 비하면 한국의 정착촌들은 「부유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부산교구 구라마리아회 일을 맡고 있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약간 마음이 동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라 여겼다. 그러나 또 다른 계기가 나로 하여금 중국의 구라사업에 관심을 갖게 했다.
85년 일본의「후꾸오까」교구장이신「히라다」(平田三郞)주교님을 만나 뵈었을 때의 일이었다. 주교님은 나에게 일본은 전교가 잘 안되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잘 되느냐며 그 설명을 해달라고 하셨다.
한국은 선택된 나라
갑작스런 질문에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 곧 생각나는 대로 『하느님께서 필요하신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교님은『왜 하느님께서 한국을 필요로 하시는가』며 반문하셨다. 나는 다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있고 북쪽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되고 얼어붙은 곳이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및 일본과 미국이 버티어 있어 통일과 세계평화를 이루기 힘들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의 열기로 중국과 북한 등 동토를 녹이기 위해 한국에 전교의 열을 지피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주교님은 듣던 중 가장 그럴듯한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비록 평소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말이 엉겁결에 불쑥 나온 것이지만 이후 이 말은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진정 우리를 둘러싼 공산국가에 대한 전교가 우리 한국교회에 부여된 하느님의 큰 사명이란 생각이 굳어졌던 것이다.
최근 해외여행 자유화조치로 우리나라의 성직자나 신자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길이 잦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북경성당 등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교회관계자들과 만나보는 이외는 직접 전교 등은 생각도 못하며 심지어 우리 신부님들조차 그곳에서는 미사봉헌도 못한다.
그래서 직접 전교는 어렵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간접 전교」는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가난에 허덕이고 병마에 시달리는 중국의 나환우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뿌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이번 여행에 나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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