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9세 된 주부로 2년 동안 얼굴에 삼차 신경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온갖 방법은 다 해보았다. 나중에는 진통제가 유일할 뿐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심한 통증은 더해가고 회수도 많아지며 음식은 물론, 물만 입에 대도 송곳니에서부터 시끈하게 번개치듯 아파 올라왔다. 부동자세로 눈까지 깜박 거릴 수가 없었다.
심한 통증이 끝날 때마다 마음은 약해지고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일곱 살 난 꼬마가 몸살감기로 열이나 울면서 하는 말이 『엄마가, 아프니까 식구들이 다 아프잖아』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이 정신이 났다. 『그래, 우리 아기 말이 맞다』가장 강한 어머니로서 내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고 가정을 지켜나가야 할 내가 내 몸 아프다고 울며 누가 잘해주기만 바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기도로써 아버지께 말씀드리자고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 아버지를 찾을 때는 분명히 계시다. 『그래, 인간이 만들 수 없는 모든 우주만물은 아버지께서 창조하여 주셨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기쁨이 왔고 평화가 충만함을 느꼈다. 그 다음날 성당에 가고 싶은 충동이 생겨서 시어머님께 허락을 받으려고 조심스레 시도를 했다. 불교신자시라, 『나 죽거든 나가거라』하시던 분, 불교 승복까지 해 입으시고 천수경까지 외우시는 지성스러운 분이, 천만 뜻밖에도 『내 인생은 다 살은 것. 네가 건강해야 가정을 지켜 나가지 않겠니. 네 마음대로 해라』하시며 승낙해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뻐서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그 후 이웃에 사시는 교우할머님께 말씀을 드리고 어디든지 열심이 따라 다녔다. 쫓아다니며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신경이 울려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맬 때는 기도하며 걸었다.
『아버지, 지금 제가 아버지 집에 갑니다.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도착할 동안 이 고통을 잠깐 멈추게 해주세요』라고…
11월 어느 날 시어머님에게만 허락을 받고 안양 라자로 마을 기도원에 가서 처음으로 철야 기도에 참가했다. 생소한 분위기에 이상한 느낌은 받았지만 마음은 설레이고 참 기뻤다.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얼굴들이 모두 평화가 가득해보였다.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은 가볍고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밤하늘에 별을 보고 고요한 새벽에 이렇게 걸을 수 있는 날도 다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때의 기쁨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한순간뿐 대문 앞에선 내 마음은 남편 모르게 갔던 것을 생각하니 남편의 화난 얼굴이 머리에 떠올라 별안간 불안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숨소리도 죽여가면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벼락을 기다리는 순간 『왜, 이제 들어와』뜻밖의 그 소리는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뜻하게 들려왔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끌어 주시는군요』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입에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몇 날이 지난 어느 날 계속 나가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일어났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여보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야단치지 않죠.』장난스러운 얼굴로 궁금하게 바라보는 남편에게 새벽에 들어오던 날 철야기도 갔다 왔다고 고백했다. 얼굴이 금방 굳어지는 남편에게 나는 다급하여 『여보 제가 얼마나 아픈 줄 당신이 알아요. 당신은 내 인생에 동반자일 뿐 내 아픔을 대신 아파줄 수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신경에 변화를 일으켜 살아보겠다고 가는 길 막지 말아줘요』
그때부터 남편은 지금까지 싫은 말 한마디 없이 협조해주고 격려해준다. 내가 성당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시어머님께서는 믿던 불교를 버리시고 성당에 나오셨다. 나는 한마디도 권하지 않았는데 어머님은 생소한 신앙을 받아들이느라 신경을 너무 쓰셔서 잠을 통 못 주무시고 투정을 하셨다. 불교 버리신지 열흘 만에 묵주기도를 배울 정도로 열성이 지극하신 분이시다. 어느 날 투정을 하시는 어머님께『잠이 안올 때는 무엇을 하세요? 그럴 땐 묵주기도하세요』하니까 어머님은 하다가 잘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5단을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계셨다. 나는 괜찮다고 용기를 드렸다. 어머님은 얼마나 두려운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하셨으면 묵주기도 두 번 끝났는데 『월요일이면 고쳐주마』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뚜렷하게 두 번이나 들으셨다고 좋아하시며 그대로 믿고 계셨다. 『네 믿음이
그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 뒤로 포일성당의 금요일 철야기도에 어머님과 함께 다녔다. 시어머니는 생각 외로 좋아하시고 열심히 믿으셨다. 지난 1월20일 포일성당 철야기도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시어머님 말씀이 『누가 주었는지 모르지만 빨간 플라스틱그릇에 마늘을 한 그릇 줘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애야, 지금 뒤져보니 없어졌다』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주신 건데 하시며 아쉬워했다.
또 2월10일 날은 어머니 말씀 중에 성체가 앞에 나타나 집으려고 하니 없어졌다고
하셨다. 그 외에도 성모님이 옆에 나타나셔서 붙잡으려고 하니 없어지셨다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께서 이 딸을 사랑하시어 투정하시는 어머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보여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정성이 하느님께로 옮겨져 얼마나 정성으로 믿으시는지, 주일미사 교리공부 안가시면 큰일 나는 줄 아시고 열심히 다니셨다. 눈이 아프시다면서도 성서를 보시고 기도서를 외우시느라 밤늦게까지 애쓰시는 것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나도 말할 수 없이 아프던 통증은 없어지고 참을 정도로 좋아졌다. 앞으로 완전히 치유해주시리라 믿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부간에 신앙을 서로 일깨워가며 위로와 격려로써 열심히 노력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6개월 만에 교리공부를 마치고 지난 3월19일 오류성당에서 많은 교형자매들이 축복해주시는 가운데 어머님은 마리아로 저는 가브리엘라로 세례를 받고, 어린 영혼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토록 보잘것없는 저에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을 주시어 무한한 기쁨과 평화ㆍ행복을 베풀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전능하시고 좋으신 아버지, 이 딸을 사랑하시어 세상에 나와 이제까지 깨닫지 못하던 하느님의 신비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오니 오직 찬미, 찬양 할뿐입니다. 또한 나를 따라 하느님에게로 돌아오신 우리 시어머님, 나에게는 참으로 장한 분이시오니 하느님, 남은여생을 편히 모실 수 있도록 부족함 많은 이 딸에게 밝은 앞날을 열어주시어, 성가정을 이룩할 수 있도록 지혜를 열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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