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사회 : 조광 교수 (고려대)
참석 :
-이동호 아빠스 (북한선교위원회위원장)
-김성태 신부 (통일사목연구소장 · 가톨릭대교수)
-양한모 선생 (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
-변진흥 교수 (호남대)
일시 : 1989년 5월 10일
장소 : 가톨릭신문사 서울분실회의실
통일을 향한 열기가 교회안팎으로 고조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신자들의 민족화해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하면서 통일논의에 대한 교회입장의 중간점검을 위해 특별기획 「통일의 광장」시리즈를 마련했다. 「통일의 광장」시리즈는 통일문제를 성서적ㆍ신학적ㆍ교회사적ㆍ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모색해보는 자리로서 통일사목연구소 연구위원들이 집필하게 된다. 집필에 참가할 연구위원들은 성서적 접근에 양한모씨(크리스찬사상 연구소장) 신학적 접근에 김춘호 신부(서강대 교수) 교회사적 접근에 김성태 신부(가톨릭대교수) 조광 교수(고려대) 변진흥 교수(호남대) 사회과학적 접근에 김덕 교수(외국어대) 윤근식 교수(성균관대) 안병영 교수(연세대) 구본태씨(국토통일원) 등이다. 이 「통일의 광장」시리즈 첫 시작으로 본보는 5월10일 서울분실 회의실에서 조광 교수 사회로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인 이동호 아빠스와 통일사목연구소장 김성태 신부, 그리고 신학적ㆍ사회과학적 입장에서 민족화해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양한모 선생과 변진흥 교수를 모시고 민족화해에 관한 좌담회를 갖고 통일문제를 논의했다.
<편집자註>
▲사회=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자발적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통일 논의는 정치인의 정량적 선전구호나 실향민의 소박한 귀소본능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톨릭신문사에서 87년도에 실시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관한 조사결과를 보면 대략 70%이상의 신도들이 교회에서 민족화해를 추진하고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도들의 바람과 한국사회와 교회의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의 결과, 교회 당국에서도 북한선교위원회와 통일사목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톨릭신문사에서도 신도들의 민족화해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하고 통일논의에 대한 교회 입장의 중간점검을 위해 특별기획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은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민족화해에 관한 좌담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한 일로 생각됩니다. 이 좌담회에서는 교회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통일을 논의해야 하는가, 교회에서 추구하는 통일원칙은 무엇이며 교회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교회에서 왜 통일문제까지도 논의해야 하는지를 변진흥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변=교회에서 통일문제를 왜 그리고 어떻게 다룰 수 있느냐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의 존재의미를 밝히려는 작업의 일부라고 봅니다. 또한 이는 오늘의 역사를 바라보는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통일문제라면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문제로만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교회에서 통일문제를 거론할 때 교회가 정치문제에 개입하는 것으로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정치문제에 대한 직접적 개입이라기보다는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신앙적 조명을 시도해야 하는 교회의 소명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교회 나름대로 분단극복과 통일을 지향하는 속에는 독자적인 신앙체험을 할 수 있고 이 신앙체험은 교회의 메시아적 사명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또한 교회는 서로 다른 이념체제를 표방하며 갈라져있는 남북한 형제들을 화해시키고 분단으로 이질화된 삶의 구조 속에 평화와 사랑 그 자체인 하느님의 모습을 구현시켜야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통일논의를 개진해야 합니다. 특히 민족분단의 십자가를 짊어진 겨레에게 복음적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교회 나름의 통일방안이 제시되고 그에 대한 논의가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교회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까닭을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서 검토해보자면 대표적인 것으로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서 3장14절 이하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금년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주제인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구절입니다. 성서의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 되어 갈라진 담을 헐어버리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희생적 사랑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우리도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같은 동족이 분열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갈라놓은 담을 허물어야하며 희생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임무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통일문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양=우리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서도 요청되는 것입니다. 사목헌장에서는 『일치의 촉진은 바로 교회의 본질적사명과 일치한다. 교회는 사회의 진실한 외적일치가 정신과 마음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세계에 보여준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목헌장에서 강조하는 일치의 진보ㆍ건전한 사회와 사회적 내지 경제적 연대의식의 본질이라는 것을 일치로서 우리의 현실과 결부시켜볼 때 이것은 통일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한국 민족사 안에서 한국민족으로서 그리스도 사건을 어떻게 봐야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화해와 일치를 일깨우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 땅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민족화해와 통일에 대한 문제가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이=여러분들께서 지금 우리교회가 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크리스찬으로서의 본질적 의무를 확인해보면 우리 크리스찬들은 이 통일문제에 결코 방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전 『너희가 하나되어라』는 간절한 소망을 말씀하셨는데 불행하게도 한 민족이면서 분단된 우리는 현실적으로 서로 증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증오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반드시 통일문제에 적극 나서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통일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논의를 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네, 우리 교회는 어디까지나 복음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당연히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역사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교회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민족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교회로서 민족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인 「민족분단」이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민족사적인 차원에서도 교회가 통일운동에 관여한다는 것은 교회 자신도 민족구성체의 일원으로서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과도 관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의 통일논의는 민족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한국사회에서 전개되는 여러 운동과 맥을 같이하여 이를 성취하고 궁극적으로 민족의 구원을 이루어 보려는 노력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이어서 앞으로 교회가 계속 추진해나가야 할 통일운동의 방향을 검토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먼저 교회가 제시하는 통일논의의 원칙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88년2월 K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 기독교사명」선언을 보자면 개신교 형제들은 민족통일의 5대원칙으로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ㆍ인도주의ㆍ민중참여 우선의 원칙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톨릭 나름의 통일원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빠스님께서는 이 좌담의 앞부분에서 복음의 실천을 위해 통일문제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통일의 대원칙으로 「복음적 입장」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복음적 입장과 민족의 화해라는 정신은 상호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빠스님께서 이를 좀 더 부연해 설명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사실 화해ㆍ용서 그리고 하나 되는 것은 복음정신의 중추적 내용입니다. 이 복음정신의 실천은 민족통일을 위해서도 전제돼야 합니다. 참다움 통일은 화해와 용서가 앞서야합니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는 데에는 현재 남북한의 사회 모두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은 그동안 상호간에 적개심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적개심과 증오를 화해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정신의 실천인 것이며 복음적 원리에서 민족의 통일을 논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상호간의 용서와 화해는 모두에게 요청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북한 지도자들에게 가진 증오와 적개심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자들은 어렵더라도 없애야만 합니다. 이러한 복음적 원칙 하에서 우리는 북한신자와 또 모든 사람과 용서ㆍ화해ㆍ하나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양=복음에 뿌리박은 복음적 통일론이 제시돼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톨릭교회가 정말 메타노이아한 교회여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복음적 원점에 서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답게 살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45년 동안 마음의 증오만 쌓아왔습니다. 이런 것을 다 풀고 정말 화해하고 사귐의 일치를 가져야 합니다만 이 사귐의 일치에 대한 논의는 아직 거론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반적으로 통일의 3대 원칙이 있습니다만 이 원칙들은 복음적 통일론에 다 용해된다고 봅니다.
▲김=통일의 원칙에 대해 교회단체에서도 여러가지가 나왔는데 우선 앞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신앙적인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신앙적 요소를 뿌리로 해 그 위에 자주라든지 그 밖의 원칙을 내세워야 하겠습니다. 신앙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분단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위해서는 남북 구성원이 분단책임을 공유하고 서로 참회하면서 용서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사회=복음적 원칙과 신앙의 입장에서 통일을 논하는 것은 가장 교회다운 자세의 표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복음적 입장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를 좀 더 부연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을 계속해 주시기 부탁합니다.
▲변=교회입장에서 봤을 때 복음적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원칙적인 내용이 첨가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자유로운 분이시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분이며 인간은 이 자유를 완성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측면에서 볼때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도 남북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운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돼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인도주의적인 원리가 실현되도록 상당한 배려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념을 초월한 통일원칙을 모색한 다음에 그런 원칙의 표방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이념의 차이를 극복해 가려는 구체적 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통일논의를 할 때에도 이 구체적 과정에 좀 더 큰 관심을 가져야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남북한 간의 인도주의적 교류와 협력을 실현시키고 그것을 보강하는 여러 장치의 마련을 남북한 정책당국자들에게 촉구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종교적 차원에서 남북한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양=복음적 통일의 원칙ㆍ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할 때 저는, 첫째는 자유이고 둘째는 정의, 셋째는 진보(발전) 그리고 넷째는 평화로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7ㆍ4공동성명에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7ㆍ4공동성명에서는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제시했지만 거기에는 「민주화」가 빠져있습니다.
그러니까 7ㆍ4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얼마 아니되어 민주화를 망각하고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을 통과시켰고 여기는 유신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교회에서 제시하는 통일원칙은 좀 더 신중을 기해서 완벽에 가까운 것으로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저 자신도 교회에서 통일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복음적 원칙을 제일 중요시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린토후서 5장19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이 화해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우리 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논의해야 하겠고 그리고 민족의 화해를 논의할 때에는 사도 바오로가 『동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도 떠나 지옥에 떨어져도 한이 없다』고 말했을 때처럼 결연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통일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하기에 앞서 사도 바오로와 같은 자기희생적 자세를 전제로 하여 우리 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원칙을 설정하고 이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들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양=우리 교회가 통일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통일의 열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일의 열성은 우리 신자전체가 일상생활을 삶의 현장, 삶의 전체를 화해의 정신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하고 또 상호간의 연대성을 강화하려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이 영성을 통해 남한과 북한 주민의 연대성이 강화되고 궁극적으로 민족통일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오늘날 통일문제를 논하는 데에 있어 제일 어려운 점도 영성적인 측면이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영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과도 관계됩니다. 우리는 통일의 영성을 키움으로써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로서 통일사목연구소는 북한교회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45년 동안 단절된 북한의 정치ㆍ사상ㆍ문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 안에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 지도자들 모두가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고 민족 재일치를 저해하는 요소를 극복하는데 노력해야하겠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교회는 남북이 분단된 후 많은 성직자들이 체포 투옥되거나 죽음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의 피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피해로 말미암은 적대감을 이제는 그리스도교인의 사랑을 통해 극복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또 교회는 신자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통일의 원칙을 제시하면서 관심을 고조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재건될 북한교회를 위한 재정후원운동까지 촉진, 확산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하더라도 우리는 첫째로 성급한 자세는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교회 안 여러 곳에서 통일문제가 논의되고 연구되는 것을 수렴하고 이를 함께 모아 같이 논의하면서도 민족통일을 위한 가톨릭의 구체적 행동방향을 정립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라서 교계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통일문제에 대해 교회적 입장을 표명하고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주교 회의와 북한선교위원회 담당주교님의 지도를 따라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변=복음적인 통일원칙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가 과연 어떠한 형태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북한정책 당국의 경우엔 서로 정권을 유지하고 그 안에 질서와 체제를 고수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화해의 자세를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어서서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곳이 곧 우리 교회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남북한 사회 모두에게 남북한 상호 신뢰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항상 시사해주고 또 그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통일사목이 지향해야할 구체적 실천방안을 살펴보면 종전까지 심정적 개인적 차원에 머물렀던 통일논의를 신학적 과학적 그리고 공동체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교회에서 통일사목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한계와 문제점이 있는가를 검토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교회가 통일원칙을 세웠더라도 정부차원에서 이 길을 열어주지 않을 때는 어렵습니다. 이번 세계성체대회 때 저쪽사람들을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이는 정부 측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이 때문에 교회의 독자적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 교회 내에서도 한계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각 교구 어른이나 사목자들이 여러 일로 바쁘기 때문에 통일사목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이 부족합니다.
▲사회=그 한계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겠습니까?
▲이=우리 북한선교위 단독으로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선교에 관한 주제들을 주교 상임위에 자주 안건으로 올려 논의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정부당국자들도 심각한 안보상의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교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일사목의 원칙과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적극 이해하고 수용하며, 이를 실천하는 데에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NCC 계통의 인사 중 통일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그들의 통일운동이 갖는 문제점을 문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두 가지의 문제점을 들고 있었는데 하나는 나라에서 교회에 대하여 통일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길을 개방해주지 않고 있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자들이 통일운동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신자를 상대로 한 꾸준한 설득과 계몽의 자세를 갖추는 수박에 없습니다만, 여하튼 우리는 북한동포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통일의 영성을 심화시켜야 하겠습니다.
▲김=통일사목 문제를 논의할 때 신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1민족, 1국가, 1교계체제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신자들이 통일사목 내지는 북한선교 문제에 대해 조금은 흥분해 있는듯합니다. 이 흥분된 상황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냉철한 입장에서 통일의 원리와 방안을 논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북한의 형제들과 믿음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양=우리의 통일사목이 가지고 있는 과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북한교회의 실정도 정확히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최근의 소식에 의하면 북한 신자들이 북경에 가서 애국교회를 둘러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학생2명을 자기 손으로 양성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의 교회가 사회주의체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 보려는 노력과 유관한 일로 생각됩니다. 북한의 교회가 중국의 애국교회를 닮는가, 북한의 주체사상적 천주교를 만들든가 아니면 로마가톨릭교회의 일원으로서 로마교황의 교도권을 존중하는 폴란드의 교회와 같은 형식으로 남아있겠는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교회의 미래 위상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이러한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검토해서 북한교회를 위해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검토가 우리 교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사목방안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이외에도 교회의 신자나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기회에 언급해주시죠.
▲변=기본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은데요. 조금 전 양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지금 남북한의 대화ㆍ관계가 겉으로는 상당히 긴장완화의 상황으로 가는 듯 하지만 내용으론 분단고착화로 가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의 분단이라는 현 단계의 특성이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남북한이 서로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민족통일의 대의명분을 서로 공유하고자 하는 연방제나 체제연합적인 접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정치권력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동시에 통일의 명분을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자기 체제에 부담이 되는 소모적인 경쟁을 지양해 나가자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남북관계에 상대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데는 바람직하지만 분단을 극복하고 완전한 통일로 가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회입장에서 볼 때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넘어서기를 전제로 하지 않는 남북한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즉, 궁극적인 상호 신뢰회복이 전제되지 않는 한 남북한관계 개선은 그 내용이 없는 것임을 교회는 경고해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분단 고착에의 경향을 우려하면서 분단체제의 고착이 민족의 분열뿐만 아니라 교회의 분단으로 고착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사목적인 지침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사회=주교단 차원에서도 사목교서의 형식을 통해 신자들에게 통일사목의 방향을 확연하게 제시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행 우리말 미사통상문중 일부에는 분단 시대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바 주교단의 차원에서 이를 바로 잡는 일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양=지금 교회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ㆍ민주주의 체제를 포함하는 기존의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고 지배세력도 전면적으로 재편성해야합니다. 한국 위정자 학자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는 제3의 길이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와 관련, 어느 사학자가 『통일문제 논의에 있어 분단만 이야기하지 체제 통일은 이야기 안 한다』고 말한 것에 공감합니다. 이 통일사목연구소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하려는 노력과 함께 가톨릭시즘의 깊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김=앞서 잠깐 이야기됐지만 북한교회의 전망은 밝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올해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가 나온 직후 이 신년사에 대해「조선천주교협회」회장이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 담화문의 내용을 보면 종교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색깔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앞서서 양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금년도 4월 북한 신자가 북경ㆍ상해를 방문했습니다. 방문 중 그들이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신학교와 수도원입니다. 이를 볼 때 북한교회가 지향하는 것을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애국교회를 모델로 삼고자하는 것이 아닌가하여 걱정이 앞섭니다.
또 북한을 방문한 신부들 이야기를 들어볼 때, 장충성당 모습에서 순수 종교적 색채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북한교회가 국가교회로 흐르지 않나 염려됩니다만, 북한교회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북한에 재건될 교회는 한반도 안에서 하나의 교계체제로 재통합되거나 적어도 교황청과 긴밀한 일치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될 때 북한의 교회도 가톨릭교회 공통체로서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하지 않겠습니까. 민족 공동체를 말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함께 생활함으로써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교회에 대해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제의하고 싶은 것은, 이 제의가 환상적일수도 있습니다만 비무장지대에 「평화市」를 건설하여 북한과 남한의 국민이 함께 생활해보도록 종교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 북한신자들도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민족의 재일치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평화시 건설구성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하겠지만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우리는 장시간에 걸쳐 통일사목문제에 대한 여러 측면을 검토했습니다. 통일사목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당연한 것임을 확인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전개시키는 데에 있어서의 난관과 어려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지향해야할 통일사목의 방향은 1민족, 1국가, 1교계제도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성취하기 위해 따르는 어려움도 알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궁극적 형태에 이르는 과정으로써 북한의 교회가 가톨릭의 본질에 충실하는 교회로 자리잡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통일사목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려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결코 소홀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하면서 오늘의 좌담회를 마치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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