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 분의 생애가 고통스러웠고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천한 신분의 생활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달콤하고 명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후꼬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7년간 살았다. 처음에는 기도ㆍ영적 독서 노동에 있어서 매순간마다 주님과 성모님과 이룬 깊은 일치 속에서 얻어지는 더할 수 없는 내적 평화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입회한 지 2년 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장상들이 신학을 연구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사제직을 준비하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말석을 얻고자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신학 연구는 그 자리로부터 멀리하게 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수도원에서 그가 갈망하던 가난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장상들은 이웃 동리에서 죽은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 가서 기도하도록 그를 보냈다.
『그 노동자의 집과 우리 수도원과의 차이는 얼마나 컸던가! 나는「나자렛」예수님 생활이 그리워 한숨을 쉴 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부자들과 견주어 볼 때 가난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 같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후꼬는 하도 불안해서 새로운 수도회를 창립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수도회의 목적은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예수께서「나자렛」에서 지내시던 생활을 따라 오직 스스로 노동한 것으로만 생활하며 그 분이 추천한 권고대로 철저히 생활하는 것이다. 또한 수도단체는 큰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작은 그룹이어야 합니다. 수도자가 많은 수도원은 필연적으로 멸시받고 겸손된 생활의 적수인 물질적인 풍요함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1897년 초에 트라피스트 수도회 장상들은 후꼬에게「나자렛」예수를 추종하는「가난과 멸시받음」의 독특한 소명을 따를 수 있도록 퇴회를 허락해 주었다.
며칠 후 후꼬는 예수의 작은 형제 샤를르 수사라는 이름 아래 독신과 청빈의 종신허원을 했다. 이 허원을 통해 그는 가난한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다.
두 달 후 샤를르 수사는 가난과 겸손 가운데 예수의 숨은 생활을 모방하려고「나자렛」으로 떠났다. 거기서 끌라라 수녀원에 하인으로 들어가 수녀원의 잔심부름과 집안일을 보살피며 그 외 시간은 성체 안에서 오랜 시간을 기도하거나 복음을 묵상하는 것으로 소일하며 가난하게 살아갔다.
『주님 예수여 온 마음 다해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보다 더 부유함을 참을 수 없는 이는 얼마나 빨리 가난해질 수 있겠습니까!』
1900년에 그는 프랑스에 돌아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일 년 동안의 피정을 하고 나서 신품을 받았다. 그러나 신부가 되어서도 가난한 자로 생활하려고 했다.
「나자렛」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신부가 한 분도 없는 모로코 근처에 있는「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인「베니아베스」로 떠났다.
『나의 소명으로 보이는「나자렛」의 생활을 내가 사랑하는 성지에서가 아니라 가장 버림받은 양떼의 영혼들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니 아베스」에서 봉쇄수도원 벽을 쌓기 시작했지만 이 벽은 결코 완공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샤를르 수사는 노예 병자 걸인 군인 등 누구든지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주민들이 그들이 기독교인이건 회교도인이건 유태인이건 우상 숭배자이건 나를 그들의 형제「만인의 형제」로 봐줄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이미 나의 집을「형제의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입니까?』
1904년에 그는「사하라」사막의 중심지인「호가르」지방으로 떠났다. 거기에는 아직 한 사람의 신부도 가본 일이 없고 그 지방의 뚜아렉 유목민들이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었다. 샤를르 수사는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마지막까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타만라셋」마을에서 그는 뚜아랙 사람들과 함께 어찌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뚜아랙 부족의 족장은 그에게『너는 과연「타만라셋」에서 가난한 자로 여기 있구나!』 하고 말했다.「나자렛」시절부터 그는 자기의 생명을 예수께 바치기를 원해왔다.
『자기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또『밀알이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샤를르 수사는 죽을 때까지 자기의 사랑하는 주님이시며 형이신 예수를 본받으면서 살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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