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읽었다.『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눈물과 슬픔조차 잃은 것 같다. 언젠가 어느 탄광에서 18명의 광부들이 질식사했대도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우리가 너무 자주 이런 소식을 듣는 탓일까. 진정 우리의 사회는 삭막해졌다. 목석과 같은 마음들, 불 꺼진 거리에 희망도 없이 그저 너와 나의 목숨만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하다』
왜인지 서글퍼지는 순간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숨만 쉬기 때문에 사는 것도 아닐 텐데 우리는 살고 있지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을 만났다. 누구의 탓인가. 위정자? 국민? 아니면 허공의 탓인가. 가을의 나무들은 푸르던 여름의 활기 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항 가지들이 찬 바람에 떨고 있다. 어쩜 우리의 차가운 현실과도 비슷한 모습들이다. 나무도 말이 없다. 말이 필요치 않은 현실이다. 그저 눈을 감으면 먼훗날 보다 따뜻할 때가 오겠지 하고 막연하나마 기다려진다. 그러기를 기다리고 또 고대한다. 세상에 악이 생긴 것은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물질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이런 욕심장이들 때문에 욕심 없이 가난하고 평화스럽게 살고 싶은 사람마저도 고생스럽다. 자기들은 알맹이로 배를 채우고 남은 껍데기로 배를 채우란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그러고도 남보고는 참으란다. 참으면 복이 온다고. 그러나 위선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무덤 위에 회칠을 했다고 무덤 속의 송장이 썩질 않겠는가. 겉으로 가장 옳은 사람으로 자처하는 사람들 너희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지 않으냐 (마태 23ㆍ27) 그리고도 남에게는 희생을 강요하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저버리는 위선자가 아닌가. 당신들 위선자들은 남의 행복의 문을 닫아 놓고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는 자기도 행복하지 못하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하는구나(마태오 23ㆍ13) 당신들 위선자들에게 앙화로다. 그러면서도 자기네 율법에 따르지 않으면 예언자를 죽이고 돌로 친다. (마태오 23ㆍ37) 그리고 의인들은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주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복음을 증언할 때다. 잡혀가서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할 것은 없다. 어느 누구도 당신들의 언변과 지혜를 따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루까 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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