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느덧 반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참전국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전쟁도 점점 확대되고 치열해져 갔으며 예비병의 동원 범위도 점점 증대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대구교구는 구(Lacrouts) 신부를 잃었다. 그러나 안 주교가 병영의 면제를 받을 수 있은 것은 대구교구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다행한 일이었다. 안 주교가 어떻게 출정하지 않게 되었는가에 관하여 교구 통신은 아주 흥미 있고 어떻게 보면 섭리적인 일화를 이렇게 얘기한다. 지난 1월 2일자「뉴욕」의 가톨릭 뉴스지는「그의 애견으로 인하여 구원되다」란 표제 아래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하였다.『한국의 젊은 주교가 전쟁터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그의 애견「렉스」의 덕택이다. 소집장을 받은 주교는 10여년 동안 그의 충실한 동무인 그의 애견과 이별하기가 싫어서 애견을 같이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배에서는 동물을 태울 수 없다고 거절했다. 주교는 다음 선편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태워주었다. 홍콩에 상륙하고 보니 주교는 군 복무에서 면제한다는 새로운 지시가 그곳 영사관에 막 도착한 것을 알았다. 만일 주교의 최초의 출발이 개 때문에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한국 주교는 전쟁에 나가 필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제일 먼저 출정한 11명의 신부들 중에서 벌써 오(Boulo) 신부가 첫째로 희생되었다. 독일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기 바로 며칠 전에 그는 민 주교에게『곧 사랑하는 한국에 돌아가길 바란다』는 희망에 찬 편지까지 보냈었다. 3분의 1 이상의 선교사를 빼앗긴 서울교구는 신부의 부족으로 당분간 아주 옹색한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출정한 신부들이 맡아보던 본당과 공소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성사 집행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본당 구역을 개편하거나 아니면 지나친 부담인 줄 알면서도 이웃 본당 신부들에게 각각 분담시키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시적이고 미봉적인 조치도 고작 봄가을 공소를 방문하는 현상 유지에 그쳤고 그것으로서 발전까지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신자 총수는 약간 늘었으나 대인 영세자는 전년과 비교할 때 654명이나 줄었다. 그러나 전쟁과 신부들의 소집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은 역시 용산신학교였다. 9월의 개학을 목전에 두고 민 주교는 아주 슬프고도 중대한 결정을 신부들에게 알려야 했으니 즉 이번 개학에 소신학생만 등교시킬 것이고 철학과 신학과 학생의 개학은 무기한 연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교회의 포교를 통제하려는 이른바「布敎規則」이 이해 8월 16일 총독부령으로 공포되었다.
이 법령에 의하건대 신부 및 회장은 총독부의 허가가 있어야 그들의 직무를 이행할 수 있었고 또한 신부 댁 성당 경당 등의 모든 시설도 사전에 허가를 얻기 위해선 시설의 이유 및 유지 방법이 가하다고 인정되어야 했다. 이에 대하여 민 주교는『우리의 시설은 결코 단번에 계획되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것인즉 어떻게 법령이 요구하는 것과 같이 미리 계획을 세워 허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면서 이 조치로 천주교가 앞으로 받게 될 장애를 예측하면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布敎規則」제4조에 의하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인물이거나 포교 방법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도 총독에게 부여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민 주교는 총독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그 해명을 요구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하여 내무부는『그것은 결코 천주교와 관련된 것이 아니고 信道와 불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내무부는 신부 댁과 성당의 명칭 위치 면적 소유주 등등에 관한 보고서를 3개월 이내에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이로써 천주교 포교에 대한 日人의 통제가 서서히 시작된다.
이상「포교 규칙」밖에 우리 교회 사업에 불리한 또 다른 법령이 나왔는데 그것은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제한 내지 금지하려는 조치이다. 수업시간에는 물론이며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학교 내에서라면 일체 종교 교육을 금한다는 것이다.천 주교가 막대한 경비를 들여가며 학교를 경영하는 주목적이 재학 기간 동안 천주교 생도들의 종교 교육을 보증하려는 데 있을진대 이 조치로 천주교가 받게 될 수난이 어떠한 것일지는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뿐더러 이 법령이 아직 10년의 여유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일부 지방에선 이 법령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관리들의 권고가 집요했다. 한 예로 충남 당진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조요한은 생도들에게 천주교를 전교한 것이 문제시되어 군수에게 호출되었다. 군수와 조요한 사이의 문답의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종교와 교육을 혼동하여서는 교육이 종교적 교육이 되는 고로 이후로는 생도들에게는 전도하지 마시오』
『종교와 교육을 혼동한 일은 결코 없습니다. 교실에서라든지 기타 공공연하게 모아놓고 생도들을 권한 일도 없고 다만 나와 지각이 상당히 있는 생도 몇 사람에게만 말하되 사석에서 말한 바인즉 이는 종교와 교육 사이에 아무 간섭이 없습니다. 설혹 군수 말씀 같이 종교와 교육이 혼동 될지라도 국법에 거스름이 아니며 교육령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고로 군수 말씀대로 복종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소위 寺內 총독 암살미수 혐의로 옥중생활을 하던 안명근 의사가 이 해 3월 18일 옥중에서 민 주교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하고자한다. 명근은 여기서 자기 본명을 야고버라고 적었으며 편지의 사연인 즉 빨리 신부 한 분을 옥중에 보내주어 성사를 받게 해 달라는 것이다.『옥중에 있는 죄인 야고버는 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오신 이름을 의지하여 공경하올 민 주교께 성사를 청하나이다. 입감한 후 성사를 허락하사 곽 신부께 여러 번 성사의 은혜를 입사왔는데 작춘 이후로 성사가 끊어졌습니다. 곽 신부께서 이미 별세하셨다 하오니 놀랍고 슬픔을 불승하옵나이다. 양현 신부나 종현 신부께 성사 주시기를 허락하사 신은의 목욕케 하심을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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