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는 마술가마를 완성시킨 것이다. 나는 더없이 흡족한 기분이었다. 이 흡족한 기분은 영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마음이며 내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달려나갔다. 김군은 이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있었으며 토마스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즉시 토마스의 일간으로 들어왔다. 그는 뭔지 모를 사명감까지 느꼈다. 항상 주인으로부터 토마스가 현실을 바로 알도록 힘써 달라는 부탁을 들어왔다. 주인은 토마스를 머지 않은 날 일류 기술자의 대우를 해줄 것이며 그 이전에는 많은 고생과 섬세한 기술을 연마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군은 토마스의 순진성에는 상당히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종종 토마스와 다투기도 했지만 마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김군은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견습공들이 뒤따라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한 가지씩 일을 시켜 놓았다.
김군은 마술가마 곁으로 다가갔다. 매우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토마스가 그토록 애써서 완성시킨 마술가마. 그는 마술가마에 손 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오로지 토마스를 위해서이며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랬다.
사실 토마스는 마술가마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절찬을 받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신앙에 휘말려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종교적으로는 크게 각광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는 절름발이가 되리라.
이렇게 되는 것은 주인 집의 사업에도 미상불 그렇게 되고야 말겠기에-큰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
김군은 살그머니 톱을 쥐었다.
다시 한 번 바깥 동태를 살폈다. 아무도 이쪽에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토마스의 전화 거는 목소리와 직공들의 일하는 소리만 들렸다. 때는 지금이었다. 그는 마술가마의 멜대에 톱을 들이댔다. 눈에 띄지 않는 가장자리를 택해서 그는 웬만큼만 지탱할 수 있도록 썰었다. 간단했다. 톱자국에다 톱밥과 가세잉을 섞어 캄부라치를 했다. 조금 표는 났다. 그러나 눈여겨 보지 않고는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김군은 조금도 죄스럽지가 않았다. 그는 일을 끝내자 재빨리 자기 일칸으로 돌아갔다.
전화는 회장님 집 마루 위에 항상 위치하고 있었다. 밤에만 방에 들여놓는 전화였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자 저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얼른
『예 토마스입니다. 누구세요?』
『요한나 수녀예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죠?』
『아!녜 그 뭐 조그만 희생에 불과하죠. 지금 마술가마가 완성되었습니다』
나는 흥분에 들뜬 목소리를 내었다.
『토마스씨 기분 좋은 모양이죠? 마술가마를 완성시켜서요』
『녜엣. 이 기쁨을 하느님께로 돌리겠어요』
저쪽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무슨 소리가 두어 마디 오고간다. 아마 체칠리아와 나누는 소리 같다. 그런 잠시 후
『저어 토마스씨. 한 가지 여쭙겠는데요. 엊그제 유치원에 오신 일 있으세요?』
나는 잠시 생각해 봤다. 엊그제, 엊그제 그렇구나.
『녜. 체칠리아씨한테 전화가 왔었지요. 저의 시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려가 봤습니다. 헌데 그건 왜 물으시죠』
나는 혹시 유치원 물건이라도 잃었는가고 괜스레 가슴이 설레였다.
수녀님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러워졌다.
『토마스씨.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 주세요. 저는 그걸 믿고 얘기드리는 거예요』
『예. 누구의 말씀인데 이해 못하겠어요』
『고마워요. 그럼 얘기드리겠어요. 토마스씨, 그날 체칠리아와 만나기로 약속한 일 있죠』
나는 가슴이 뜨끈해졌다. 약속을 어긴 게 못내 죄스러워졌다. 그러나 나의 뜨끔한 마음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처녀를 꾀어 내려다가 그 부모들한테 들킨 것처럼.
『수녀님, 죄송하게도 저는 체칠리아과 그날 저녁 여덟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어떠한 책망도 달게 받을 작정으로 나는 저쪽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토마스씨, 왜 그날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체칠리아가 한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다가 울고 갔어요』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깜짝 놀라는 소리가 나의 입에서 뛰어나왔다.
『녜엣!』
『그렇게 놀라실 건 없어요. 아마 무슨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요. 토마스씨, 잠깐만 계세요. 체칠리아를 바꿔드릴 테니 사과라도 해봐요. 서로를 위해서도 중요하니까요.』
곧 전화가 바뀌었다. 체칠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약간 책망하는 듯이 들리는 뾰루퉁한 목소리다. 나는 한쪽 눈이 찡긋찡긋해졌다.
『아, 체칠리아씨세요. 저어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아햐 할지 모르겠습니다』
『책망은 않겠어요. 그날 저녁에 와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를 꺼예요. 저도 토마스씨도 말예요』
『체칠리아씨, 사실은 저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습니다. 그러던 게 그만 이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