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되어 비밀리에 포교되던 암흑시대가 지난 뒤에 세워진 초기 건물들이 원효로와 중림동과 명동에 남아 있다. 천주교 용산 신학교는 1892년에, 중림동의 약현성당은 1890년에, 명동의 주교관은 1890년에, 명동 종현성당도 1892년에 정초되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가 요왕 고라는 외국인 신부의 설계 감독으로 지어졌으며 그 시기는 유럽에서는 이미 현대 건축운동이 일어나 꼬딕과 르네쌍스 스타일이 배척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사정은 그러한 여건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사정을 잘 말해주는 비레모(禹一煥) 신부의 글을 引用한다.
『기본교좌 성당의 건축을 설계 감독한 자는 요왕 고 신부(G COSTE)였다. 1886~1887년에 불란서와 한국간에 통상조약이 체결되니 이로써 조선교회는 태양을 보게 되었다. 1887년에는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종현 등성이를 평평하게 뭉겨 내렸다. 이와 동시에 주교관과 수녀원 약현성당(現 중림동성당)과 용산 신학교 등의 건축들은 고 신부의 설계와 지휘 아래에서 건축에 착공되고 있었다.이 성당이야말로 고 신부의 설계 중의 걸작인 것이다. 고대식 건물로 삼연이 라띤(LATIN) 십자형으로 설계된 것이다. 길이 65m 종각의 높이가 40m가 넘게 창공에 솟고 꼭대기에는 구속의 거룩한 기호(십자가)가 엄연히 서 있다. 이 건물은 실로 수도의 호화로운 장식이요 모든 외교인들로 하여금 교인들이 신봉하는 천주께 대하여 고상한 관념을 가지게 하였다. 당시는 벌써 옛 시대로 흘러가고 목도한 증인 몇몇이 생존하지 못한고로 이런 건물을 그 시대에 세우기에 얼마나 곤란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는 자가 매우 적다. 그 옛날에는 벽돌도 양회도 없었고 조선인 중에는 양옥을 짓는 미장이나 목수도 없었다. 중국에서 벽돌공들과 미장이들을 초빙하기는 하였으나 초보적 기술밖에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고 신부는 20여종의 벽돌 모형을 만들게 하고 쉴새없이 지켜서서 제조하는 데나 당신의 설계대로 쌓아올리는 데 세심을 다하여 지휘 감독하였다. 그러나 부벽주 창문 기둥 등을 쌓는 데 얼마나 세밀한 주의와 인내가 필요하였던고!』
한국에서 교회 건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성당이라는 건물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떻게 지어지며 어떻게 민중에게 쓰였는가 하는 한국적인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국인 신부들의 아마추어적 솜씨로 설계, 시공되던 것들이 몇몇 한국 건축가들에 의해 대체되고 또 그런 사실로 인해서 건축가라는 전문적인 직업인의 일이 실제로는 아마추어의 솜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신을 초래한 정도의 변화이겠다.
그것은 충분히 이유 있는 불만이라고 보아져야 한다.
지금까지 지어진 어느 성당이 초기의 그것들만큼의 교회로서의 건축적 해결(광범한 의미의)을 이룩하였는가.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어떻게 현대 건축이 교회의 건축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가. 그리고 유럽에서의 교회의 현대화가 어떤 필연성 위에 세워졌는가를 논의하고 결론 짓는 일이다.
그러나 그「현대화」에는 우리가(성직자이건 건축가이건) 범해서는 안 될 엄연한 형식이 있다. 현대 건축이「형식」을 탈피한 것은 문화사적으로 필연적인 일이지만 교회와는 감동적인 건축 공간에 있어서의 현대화는 제태가 갖는 의미, 성탄식이 갖는 의미 강유대가 갖는 의미까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엄밀한 형식은「현대화」의 와중에서 뿌리깊은 우리의 약속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현대화된 최근의 우리 성당 건축에서 이런 것들의 이해가 결여된 많은 결과들을 본다. 그리고 단지 현대적인 외관만으로 그 건물의 잘잘못을 가리려 드는 경향들을 본다.
한마디로 해서 무의미한 직업적 기교가 꼬딕의 철저한 모방보다 못하다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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