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죽음. 나와는 관련 없을 것만 같은 죽음도 순간을 지키고 보내는 입장이 그 언젠가 한 번은 나도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흘려버리는 이뻐 죽고 우스워 죽고 추워 죽고 배고파 죽고 갖잖아 죽는 습관적인 죽음이 아니고도 수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다 해도 사람이 진정 죽어 보지 않고서는 죽음이 어떻다고 그 아무도 말 못할 것이다.
바쁘게 오가는 인생 여정 그 안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도 숱하겠지만 유독 생각난다. 내가 첫 번으로 사형 집행장에 입회했을 때의 일이다. 지난 3월 사순절이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몇 번이고 고쳐 세워가며 한 영혼의 마지막을 지키던 그 순간을 아마 일생을 두고 나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가는 마지막 길이 가지가지 형태이겠지만 여기 죽음을 쳐 이기고 영원한 거처로 입당하는 승리자를 본다.「천하의 몹쓸 자」란 이름 아래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이 이렇게 복될 수가 있느냐고. 이 사람을 보라.
태연한 모습 차분한 자세 그 소담한 표정은 언제 불러도 기꺼이『예 아버지여 나 여기 있나이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다. 서 스테파노─그에게 붙여진 살인 강도란 죄명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오직 아버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철부지 아이와 같이 완전히 모든 것을 맡긴 표정이다. 미소 띈 얼굴로 푸른 수의에서 흰 한복으로 갈아입는 여유와 단정히 꿇어앉은 모습은 초조와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사와 안도의 숨을 쉬게 했다.
자신의 잘못을 뼈져리게 뉘우치고 가톨릭에 귀의한 후 짧은 신앙 속에 가진 바 모든 것을 기꺼이 돌려드릴 수 있는 맘『주여 굽어보사 자비를 베푸소서』기도했을 뿐이다.
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해서 그 몇 번이나 각오와 수련이 되었기에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듯 판결문 낭독에 이상이 없음을 승인한다. 마지막 유언이다.
『나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세상에 나서 한 일이 없다. 앞 못 보는 이에게 내 눈을 기증한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역시 최고수다운 섬뜩한 기분이다.
오직 죽음만이 자기의 과제인 양 그 담담한 표정이 평소에 주일마다 한 번씩 만나던 때와 꼭 같다. 죄와 죽음에 대해서만은 이야기하기를 꺼려 하던 나였으나 그러나 그것만은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져 버렸다.
종교 의식의 차례이다. 사전에 신부님께서 어떤 순서로 기도를 하실 것인지 정하였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전후를 분간할 수가 없다. 그래도 먼저 고백의 성사를 받고 성체를 뫼신다. 신부님의 강론이 있은 후 스테파노는 마지막 성가를 불러 달라고 청하였다.『수녀님 109장을 불러주세요』하는데 도무지 무슨 노래인지 기억할 수 없다. 신부님께서도 통 기억을 못하신다.『스테파노 우리 다 같이 아는 성가를 부를까』『수녀님 그 구절이 좋은데』한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성가 53번「주여 임하소서」를 시작했다. 온갖 힘을 다해서 입을 열어볼려고 애를 썼으나 얼어붙은 다리와 입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일 절이 끝날 무렵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본인은 2절을 또 더 크게 부른다. 순간 하늘이 노랗고 그렇게도 마지막 해주고 싶던 말들이 싹 가셔진 채 나는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눈 깜박할 순간이 지났을 때 모든 것은 끝났다. 입회자들이 모두 퇴장하고 난 형장은 무서우리 만치 조용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이 승리에 먹혀 버렸으니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 가시는 어디 있느냐?(1꼬ㆍ15ㆍ55─57) 비록 부자유 속에서 마지막의 순간을 당하지만 영원한 안식처로 옮아가는 자유의 길이 있으니 그 얼마나 복된지고─지금 생생히 살아있는 유언의 눈과 함께 나는 가끔 109번을 불러본다』
목석과 같은 자야 눈물 없느냐고─언제 불러도 기꺼이 응답할 수 있고 조건 없이 바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마지막이 될 수 있게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구하면서 월 피정 날엔 묘소 방문도 잊지 않는다.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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