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 운동은 이 복잡한 사회에서 눈코 뜰 사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실천에 있어서는 환경적인 요소를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놓여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사고방식이나 기호성도 시간과 더불어 달라져 가고 있다. 권투시합을 보면서도 얼굴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팔을 배배 틀어넘기고 이빨로 물어뜯어서 피가 흘러내리는 레슬링을 태연스럽게 보고 있는 것 등이 이의 한 예이다.
번개 같이 움직이는 이 사회에 공해란 두 글자가 큼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보다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 욕정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눈 앞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나머지 자신의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독소를 계속 배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콜레라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콜레라 균이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면 풍부한 영양과 알맞은 체온을 타서 왕성한 번식을 계속하지만 반면에 자신에게 해로운 독소도 계속 배출한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구토 설사를 계속하는 나머지 수분이 모자라서 결국 죽는다. 그러나 의지가 강한 사람은 물통과 소금통을 부둥켜안고서 계속 물을 섭취하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혈관 속에서 번성하던 콜레라 균이 자신이 배출한 독소로 인하여 그 이상 살 수 없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오늘의 공해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체에 해로운 독소를 계속 배출한다면 콜레라 균의 운명을 뒤따를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 천당보다도 커져가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느끼는 행복감이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옛 사람들도 지족이면 상족이란 말을 남겨 놓았다. 볼 수 없는 저 세상에서의 행복은 고사하고 이 현실에서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천주님의 계명은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누구나 지켜야 할 규칙이다. 따라서 동양 도덕의 근본이 되어온 삼강오륜은 물론이려니와 법치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모든 법률에도 표현은 다를지라도 모두 이 계명의 테두리 안에 놓여 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복음화 운동이란 값싼 감정적인 눈물로서가 아니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희생으로서 이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살기 위한 본능에서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능을 갖춘 인간으로서 인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질서 유지는 벌레들 사회에서도 다음과 같이 잘 이행되고 있다.
꿀벌은 여왕봉을 중심으로 동봉과 웅봉이 있다. 여왕봉은 하루아침의 밀월 여행이 끝나면 일생동안 벌통 안에서 산란만을 계속한다. 동봉은 먹이를 조절하여 이 알을 동봉, 웅봉 및 여왕봉으로 키워가며 꿀을 저장하여 식량 자원을 확보한다. 식구가 많아지면서 통 안이 비좁아지거나 여왕봉이 늙어서 산란력이 약화되면 왕유를 준비하여 새 여왕봉을 키우기 시작한다. 한편 늙은 여왕봉은 새 여왕이 나오기 전날 아침에 늙은 벌들만을 데리고 집을 떠나간다.
만일 날씨가 나빠서 미처 집을 떠나기 전에 새 여왕봉이 나오게 되면 신구 여왕의 투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한 마리의 벌레라 할지라도 사랑의 지능에 못지 않은 지혜를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환경 조건이 그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을 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길이 이 지구상에 유지하기 위한 공해 방지는 정신적인 협력 없이는 도저히 그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복음화 운동은 현실 면에 있어서 정신적인 공해 방지에 앞장섬으로써 생리적인 공해 방지의 원동력을 만듦과 동시에 잘 살기 위한 운동에 있어서 정신적인 확고한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복음화 운동이란 현실에서 벗어난 어려운 이론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을 이 땅에서 직접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정신적인 만족이 결여된 물질만의 욕구 충족은 公害 防止에 있어서 불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교회는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리고. 이 교회에 파견된 사제는 사제로서 지켜야 할 테두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평신도는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손이 닿지 못할 곳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으므로 교회창건 당시부터 평신도에 대한 기대가 컸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도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인자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행실을 보아 용서할지 모르지만 감사의 정이 결여된 그를 결코 칭찬하지는 않으리다. 그러나 현대인은 귀를 통한 좋은 말씀보다도 현실적인 만화 쪽지에 눈살이 먼저 가는 듯하다. 따라서 열 마디의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사랑과 희생으로서 한 마디의 참 뜻을 몸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평신도가 할 수 있는 복음화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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