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말했다.
『저 길 제일 먼저 돌아오는 사람은 이 마술가마에 태워주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전봇대를 향해 달음박질을 친다. 마치 벌떼와도 같다 뛰어가다 넘어지는 아이, 신이 벗겨져서 엉거주춤 서는 아이, 밀치는 아이 소리 지르는 아이 등등이 속출했다.
나는 잠시 서 있었다. 아이들이 웬만큼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이름에 맞은 편 골목으로 재빨리 새버렸다.
유치원엔 사람들이 많았다. 성당 마당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미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유치원 현관 밖에도 웅성거리고 섰는 인근의 구경꾼들 창문으로 내비치는 사람들의 들뜬 모습을 그들은 원아들의 자모들로서 저마다 잘 차려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요한나 수녀님과 체칠리아. 극장 무대에서 실수 없도록 다시 한 번 연습해 보는 원아들이 또한 보였다.
유치원의 협소함이라든가 시설의 미비한 점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도시의 유치원에서도 감히 못해보는 발표회를 C본당의 유치원에서는 해내지 않는가.
나는 트로이의 병사처럼 위풍당당해졌다. 무한히 고무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흡사 어깨에 떼멘 게 승리의 방패처럼 여겨졌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의 노고, 나의 희생 그리고 나의 솜씨, 이것이 삼위일체가 되어 마술가마를 이루고 있잖은가.
나는 어쩐지 인기를 독차질할 것만 같았다. 마술가마를 장식한 산호 조각이 그것을 확신케 했다.
나는 통나무를 무우 다루듯이 해서 산호 조각을 새겼으며 이것이 제빨리 되지 않을 경우를 감안해서 밤샘을 하기도 했다. 물론 공장에서는 해낼 수 없는 밤샘이었다.
나는 일감을 망태기에 집어넣고 출퇴근을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낮에는 공장 일칸에서 마술가마에 매달리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서 산호 조각을 새겼던 것이다. 이렇게 했던 바 정해진 시일 안에 마술가마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체칠리아가 달려나왔다. 마술가마를 떼메고 들어오는 나를 현관 밖의 사람들이 먼저 봤어야 했으나 그들의 시선은 전축이 쿵쿵 울리고 원아들이 총연습을 하고 자모님들이 까르르 웃어제끼고 하는 광경에만 못 박혀 있었다.
지난 번의 슬펐던 약속 같은 건 벌써 잊었다는 듯 달려나온 체칠리아가 환성을 지른다.
『어머나! 마술가마!』나는 그녀의 껑충 뛰는 감탄 앞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체칠리아씨. 좀 거들어 줘요. 어깨가 결려서…』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녀는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 두 손을 받들었다. 마술가마는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졌다. 나는 어깨를 주무르며 이리저리 꼼지락거렸다.
뻐근했다. 크기와는 달리 마술가마의 무게는 통나무로 조각한 수십 개의 산호 조각으로 인해 더했던 것이다.
『토마스씨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요』체칠리아가 멜대의 한쪽을 들었다. 그녀는 자모님들 앞에 토마스의 솜씨를 얼른 보이고 싶었다. 토마스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녀에겐 소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마술가마의 앞쪽 멜대를 들었다. 흡사「결약의 궤」처럼 그녀와 나는 앞뒤에서 마술가마를 받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밖의 사람들이 재빨리 길을 텄다.
일제히 눈길들이 퍼부어졌다. 꼬마들은 조금 전까지는 요한나 수녀님의 지시 앞에서 손발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히야! 마술가마다』모두가 외쳤다. 그리고는 달려들었다. 마술가마가 그들의 눈엔 산타크로스의 방울마차처럼 희귀하게 보인 것이다.
꼬마들은 마술가마의 어느 부분이라도 좋았다. 만지고 싶었다. 타고 싶었다. 마술가마에 타면 대장이 될 것 같았다. 체칠리아는 나를 쳐다보았다. 토마스씨 기쁘지 않으세요 하고 말하는 눈이었다.
자모님들 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그것 총각이 만들었수?』 나는 유치원에 들어선 후부터 마음이 혼란되어 있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물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아무에게나 상관없이 대답해 주었다.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만들고 보니 이렇게 휼륭한 마술가마가 됐어요』
꼬마들은 서로 타겠다고 다툰다. 내버려 뒀다간 주장 무대에도 오르기 전에다 망가질 것 같다. 체칠리아가 황급히 꼬마들을 만류했다. 그녀는 생각다 못해 마침 비워져 있는 박스로 마술가마를 들어씌웠다. 요한나 수녀님이 포장된 상자를 꺼내왔다. 나의 짐작컨대 수녀님은 대견스러워하는 빛이었다. 당연했다. 마술가마는 자기의 시킨 대로 만들어졌지 않았습니까.『토마스, 수고해 주셔서 고마워요. 약소하지만 받아 주세요』
수녀님은 그것을 내밀었다.
나는 수녀님이 내민 것을 받고 싶지 않않다. 그것을 받는다면 나의 희생이 격감되리라 여겨졌다. 나는 처절했다.
『수녀님 저는 본당 일에 헌신한 것뿐입니다. 선물은 거둬 주십시오』 자모님들이 한층 더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나의 희생정신을 알아보는 듯 나에겐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