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르 떨며 대롱 매달린 마지막 카렌다 한 장이 막 건너가려는 또 한 해의 여운을 남기는 듯하다. 새해의 날이니 묵은 해의 날이니 뭐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닌데도 밋밋하게 살아가는 우리 서민생활 안에서의 12월은 큰 자극의 달인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헌 날들을 정리하며 새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겠다.
매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침침한 사건들 속에서『주여 어찌하여 우릴 버리시나이까』『주여 어찌하여 이 곤경 중에 당신은 주무시고 계시나이까』『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하며 신음하고 외치던 날들로부터 헤어나 머리를 들어봐야 되겠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구름 기둥을 내려주신 역사의 하느님이 우리게겐 언제나 침묵을 깨뜨려주실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깨어나 밝은 또 하나의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제 우리는 남의 바둑 훈수 하듯 핏기 없는 비판의 소리만 거듭하고 앉아 있지만은 말아야 되겠다.「지금」「이 자리」에서「내」가「무엇」을 해야 할까를 찾아내야 되겠다. 머잖아 우수수 떨어진 12월의 날들이 나에게도 전하는듯 쳐다보고 있다.
삶은 마치 가마니를 짜 나가듯 자신이 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해 본다. 헌 것을 기둥 삼아 또 다른 새끼줄을 넣어가며 엮어 나아가야 한다.
분주 복잡한 세상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워져 모르는 사이 잃어져가는 자신을 되찾아 차곡차곡 내 가마니를 짜 나가야 되겠다.
남 몰래 숨겨진 영혼의 밑바닥에 등불을 밝히고 내 안에 입김 불어넣어 주신 창조주 앞에 꿇어앉아 실낱 같이 들리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을 찾아야겠다.
무관심 속에 묻혀 있는 주위의 많은 이들도 하나하나 모두 찾아야겠다-차장 아가씨. 청소부 아저씨. 지게꾼 할아버지. 택시 운전사 아저씨…모두 감사받기를 체념한 은인들을 찾아야겠다.
또 찾아야 할 이들이 있다. 내가 꼭 함께 있어줘야 할 때 있어 주지 못한 이들이다. 맑은 눈망울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방황길에 함께 있어 줘야겠다. 깊은 심연으로 빠져가는 고뇌 속에 함께 있어 줘야겠다. 비굴한 미소 대신에 분노를 터뜨리는 젊은이 옆에 있어 줘야겠다.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공존자로서 말이다.
이제 잃었던 모든 이를 찾아가 망년 파티라도 갖고 싶다. 고요히 합장한 마음으로 잔잔하고 투명한 만남을 갖고 싶다.
공중에서는 새에게도 무심하지 않으신 나는 그분을 우리 모임에 초대하고 싶다.
씁쓸한 회색빛 불만일랑 거두고 그저 감사드리고 싶다-사랑의 넋을 부으신 님께. 또 다른 태양을 보내시는 그님께.
그리고 함께 합창하고 싶다. 론멜로의 시 한 구절을-『관동하라. 오늘보다 높은 내일을 위하여. 목 매인 송아지처럼 쫓기지 말고 투쟁하는 영웅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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