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겨울방학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개학날이 가까와지자 형일이와 형철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도 하지 않은 숙제가 이미 해놓은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두 형제가 저희들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
한두 시간 숙제장과 마주하고 보니 형철은 싫증도 나고 갑갑하기도 하고 자꾸만 하품도 나고 몸이 쑤시기도 한다.
바깥에서 아이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형철의 마음은 달뜨기만 한다.
그래도 형일은 처음 그대로 계속 책상에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다.
『형 이 산수 문제 좀 해 줘』
형철은 숙제장을 형일에게 내민다.
『나도 할 게 많단 말야』
형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모르겠단 말야』
형철은 연필 뒷쪽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하기 싫은 걸 하니까 그런 거야』
『가르쳐 안 주면 난 안 한다』
형철은 형일의 일을 거들어 줄 때와 같이 배짱을 부린다.
『안 하면 네가 손해지 뭐 내 공부를 해 주는 거냐』
『정말 안 해 주겠어』
『그래 미안하지만 못하겠어』
『좋아 그럼 저녁에 아빠 보고 형이 안 가르쳐 준다고 일러바쳐도 돼』
형철은 공갈조로 나온다.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야』
형일의 태도가 이렇고 보니 형철은 별수없게 되었다. 숙제장을 자기 책상 위에 놓고
『아, 하기 싫다. 형 나가 놀아』
형철은 기지개를 켜며 본심을 털어놓았다.
『싫어』
형일은 형철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졸립다』
형철은 아무래도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형』
형철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른 모양이다.
『왜』
형일은 역시 모리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저 말야, 사자하고 호랑이 하고 어느 쪽이 더 강해』
형철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야 사자가 강하지 사자는 맹수의 왕이라고 하잖아』
형일은 사자가 강하다고 단정을 했다.
『있잖아 민우가 맹수 중에서 가장 강한 게 호랑이라고 했어』
형철은 형일이가 자기의 이야기에 좀 흥미를 갖는 듯한 눈치를 보이자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뭐 호랑이라구. 병신 알지도 못하면서 공갈이야』
형일이가 웃으며 말했다. 형일의 태도가 이쯤되자 형철은 차츰 신나게 되었다.
『형 민우가 공갈이지?』
형철의 말소리가 밝아졌다.
『병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니네들한테 뽐낸단 말야』
『형 그럼 민우에게 형이 말한 대로 해도 좋아』
『좋아 얼마든지 말해, 뭐 내가 겁낼 줄 알고…』
잠깐 여기서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형 그럼 내가 사자가 되고 형이 호랑이가 돼서 싸움 해 볼까』
형철은 아무래도 심심해서 못 견딜 모양이다. 행동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 해볼 테야』
형일이도 역시 행동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겨났다.
『그럼 난 맹수의 왕인 사자야 사자는 호랑이보다 강하다고 형이 말했어』
형철은 자기가 사자가 되겠다고 하는 데는 형철이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
『그럼 사자가 이겨야 해』
형철은 자기가 이기고 싶다. 그래서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싸워 봐야 아는 거야』
형일의 대답이 이같이 나오자 형철은 좀 시무록해진다. 형일의 태도가 이렇게 되고 보니 결정적으로 형철이가 이길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철의 열이 좀 식어가는 눈치다.
『자 시작이다』
형일이가 힘차게 소리 치며 형철의 앞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형철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다가『사자가 서서 다녀? 엎드려 다녀야 해』하고 주장했다.
『그럼 좋아』
형철의 말이 옳다. 형일은 방바닥에 엎드렸다. 형철이도 엎드렸다.
두 아이는 서로 마주 엎드리고 입으로 으르렁거린다. 형일이가 앞으로 기어 나가면 형철이가 뒤로 물러선다.
형철이가 앞으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서면 형일이가 뒤로 물러선다. 한동안 이러다가 형일이가
『에잇!』
하고 한 쪽 손으로 형철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형철은 꼼짝 못하고 깔리게 되었다.
『잠깐만 아까 형이 사자가 제일 강하다고 하잖았어』
형철은 숨가뿐 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런데 어떻단 거야』
『그런데 왜 호랑이가 더 세냔 말야』
『그야 호랑이가 이기는 수도 있지 뭐』
『그럼 나 안 해』
형철이가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형일은 형철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럼 다시 해』
형철은 신나게 소리쳤다. 두 아이는 서로 입으로 으르렁댔다.
『에잇!』
『에잇!』
또 형일이가 먼저 형철의 어깨를 한 쪽 손으로 내리누르며 올라탔다.
『아가가!』
형철은 울며 방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형일은 얼른 뛰어내렸다.
『사자가 울면 맹수의 왕이 돼?』
『그래도 아프단 말야』
『맹수의 왕은 호랑이다』
형일이가 웃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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