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구가 가치 체계를 규정 짓는다. 이를테면 사회 현실이 참여하는 지성을 계발하고 심화하려는「창조」지의 본래 의도는 충분히 평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 현실은 그러한 창조적 지성을 거의 전적으로 하기에 이른 느낌이 든다. 획일적인 사이비 참여가 곧 봉사하는 제스처로 통용되기도 하고 실상 인간 존엄에 역행하며 사회 정의를 짓밟기 일쑤인 매커니즘의 가공스런 횡포가 곧잘 합라화되기도 한다. 신문ㆍ잡지는 많아도 날이 갈수록 정직한 언론은 말살되어 가는 한국 문화의 심각한 위기 현황을 염두에 둘 때 신년호「창조」지는 작으나마 한 가닥 양식의 촛불을 밝혀 보인다.
한국 문제의 직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데 김준희, 양호민, 박동운 제씨가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의 운명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를 다각도로 의미심장하게 고찰하고 있다. 어차피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그 해결이 달려 있다는 주체적인 인식을 촉구하는 점에서 국민 총화의 슬기가 요청됨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검은 대륙의 혁명아「프란츠 파농의 혁명론」(황성모)을 송년호에 이어 비판적 소개를 하고 개인과 국가 권력 관계를 다룬「자유와 권력」(A. 자니에르)을 소개한 의도는 민족주의와 자유 이념을 구현하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발표 유고 실학파의 거두 차산의「김정일록」은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나「실학 사상의 형성과 전개 과정」(이상은) 이 참신한 방법론에 입각하고 있는지는 의아스럽다. 또한「민족의 좌우명을 찾아」(안병욱)를 보면 ①스스로 믿고 살자 ②바로 사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다. ③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 ④한 우물을 파라. ⑤자기 분수에 맞게 살자는 등의 말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창조논리 이전의 생활논리인 셈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상식론만 반복해야 하는 우리 사회인지 정신의 빈곤을 새삼 되씹게 한다. 이를「국민의 좌우명으로 제시」하는 심각성도 문제이지만 너무도 소극적이요 너무도 비창조적인 논리의 일면을 숨기지 못해 쑥스럽다.
한편 문예물은 이번 신년호에 와서 부조화의 양상을 견본으로 제시한 격이 된다. 시「어릴 때 조국」(신기선) 이나「맨발송」(권일송) 을 남북의 문제에 접근하는 즉흥조 참여시의 시도로 보고 선덕여왕과의 짝사랑을 읊조린「우리 데이트는」(서정주) 을 차라리 시적 몽상의 전개로 본다 해도 소설「목가」(김의정)의 경우 경문의의의 품을 떠나 초자연의 에덴에서 무곡을 즐기자는 권유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가치는 물론 다양성을 띠고 형성된다. 그러나 그 한계 또한 없지 않다.
긴박한 이 시대에 진지한 문화가 객관 상황의 반어까지를 수용할 겨를은 없다. 더욱이 참여적 지성의 풍토에 있어서랴.
앞으로의 줄기찬 창조를 기원하기에 이 점 재검토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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