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인간 평가
오늘의 사회는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지적하였다. 기술은 본시 개체나 개인의 고유성이나 인격이나 윤리성을 문제로 하지 않고 부호와 숫자와 통계와 확률에 의한 획일성과 객관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술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는 개성이나 인격이 몰각당하고 인간은 그 대중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느냐 즉 얼마나 유용한 부분품 노릇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존재 가치가 평가되고 처리된다.
옛말에 사람은 다 제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맛에 산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이미 대중사회에서는 무의미한 말이다. 사람들은 제가 잘나서 잘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인정할 때에만 잘나게 되어 버렸다. 그러한 인정의 기준은 인품이나 덕망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진 기술이다.
그렇게 때문에 대중문화 안에서의 인간의 가장 큰 고민은 기술의 발전에 비하여 인간성의 개발이 항상 미급하다는 현상이다.
기계적이요 획일적이요 조직적인 기술에 의하여 개인의 인격은 무시되고 개인의 자유는 부당하게 제한되고 개인의 사생활은 간섭 받고 폭로되고 모든 사람들이 홍보 수단의 횡포에 의하여 비슷한 최면술에 걸리기 때문에 각자는 개성을 잃고 책임의식이 희박해지고 윤리의식이 감퇴되어 인간 소외 현상이나 자기 상실 현상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인의 가치 기준
기술문명의 소란과 환상 가운데서 인간은 스스로의 영성과 도의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가치의 기준을 정신적인 것에나 영구한 것에 두지 않고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것에 두게 한다. 그 결과는 물질에 대한 욕구를 팽창시켜서 인간이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이어야 되는가 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를 문제로 삼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과 같이 실천적인 유물론이 횡행하던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세계는 지금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냉전이나 열전보다는 많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대립 항쟁으로 더 고민하고 있다. 무력전쟁보다 경제전쟁이 더 치열하고 한 국가의 위기는 외부로부터의 침략보다 국내의 불균형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세상의 후진지역의 욕구 팽창과 선진지역의 이기적인 이윤 추구와 초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횡포는 인간의 개발이나 도외생활의 향상이나 영구한 행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로 말미암아 현대 사회는ㆍ윤리ㆍ종교 신앙에 대해서 무관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문명은 부정적인 요소를 가진 반면에 깊이 관찰하면 대단히 긍정적인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나의 세계로 지향
모든 기술 분야에 있어서나 학술 분야에 있어서나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현대 사회는 보다 정확하고 세밀하게 현실을 파고들어 깊이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 깊이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막연한 인상이나 개연성에 의존하여 처리되던 일들을 정확성이나 확실성에 이르기까지 추구하여 마지않는 현대인의 기질은 진리에 대한 충실성 내지 성실성을 말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성실한 갈망은 그 분야가 어떤 것이든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인간의 품위에 적합한 일이며 현대 사회의 가장 훌륭한 특색 중 하나이다.
미생물학에서 우주과학에 이르기까지, 전자과학에서 신학에 이리기까지 탈신비적 경향으로 나가는 것은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대립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세계는 분명히 하나의 세계로 지향하고 있다. 모든 지리적인 장벽은 무너졌고 모든 민족과 언어가 혼합되어가는 이 현상은 부득이 모든 인간의 공동 운명의식을 낳게 하였고 인류 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시도가 과거 어느 때부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류에 기여하는 문명
이러한 연대의식은 국제적인 쌍무조약이나 UN을 통한 상호 원조 계획에서 나타난다. 세계 보건기구, 식량기구, 문화기구 등은 정치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인류의 공동 복리를 추구하고 있다. 안일무사를 생활 신조로 하는 대중 가운데서 그래도 상당한 숫자의 사려 깊은 인사들이 대중의 책임감을 일깨워 주면서 범세계적으로 약자를 도우려는 투쟁에 가담하고 있다.
이런 적극적이고 고무적인 현상들은 인류애의 현대적인 표현이고 아주 복음적인 요소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초자연주의자 경건주의자들의 눈에 캄캄한 세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오늘의 세계가 결코 역사상 가장 암담한 세계는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이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가 될 만큼 이 세계를 만드신 적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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