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창조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말했다. 요는 인간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 무에서 유로의 생성과정은 생물학자들의 설을 따라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가톨릭 교리 그 자체에 대해서 성실한 태도로 연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어떤 미지의 사실에 대해서 의혹을 갖는다. 그 의혹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길을 찾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무」에서「유」를 끌어내게 한 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다른 한 면에서 고찰하기로 하자. 세상에는 많은 사물들이 있다. 즉 그 모든 사물들을 구분해 본다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필연유고 다른 하나는 우연유라 하겠다. 즉 모든 유를 둘로 나누어 볼 때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럼 어떤 유가 반드시 있어야 되며 어떤 유가 있어도 없어도 무관한 유일까? 『당신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필연유인가 아니면 우연유인가 생각해 보라』하고, 한 번 예비자 교리시간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이 자기는 필연유란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필연유가 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했을 때 아무도 자기 자신이 필연유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우연유이다. 그리고 있어도 없어도 될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연유란 자기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유에 의존해 있다. 그런데 우연유끼리 의존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연유가 있다는 것은 필연유에 의존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에 한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가 무엇인가 하면 창조주란 이름을 가진「필연유」다.
그러므로 필연유는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있다. 누가 창조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존재다. 즉 절대자이시고 만물은 그에 의해서 존재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절대자에 대해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를 존재케 한 위대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와 나와의 관계는 창조물이고 창조주라는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