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본당 재임당시 레지오ㆍ청년회 등 각 단체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JOC의 위치도 상당하였다. JOC는 내가 부임하고 나서 설립됐는데 당시 대한ㆍ상호ㆍ내외 방직과 제일모직이 본당관할 구역에 있어 JOC의 역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활동도 매우 활발했다.
또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에 의해 65년부터 한국어 미사봉헌이 결정되자 칠성성당에서도 미사 때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했고 그전까지 성당안쪽이 벽면에 부착되었던 제대를 분리해내어 신자들과 마주볼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미사 때 자칫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쉬었던 신자들은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친밀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후 평신도의 활동이 강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인데 제도로서의 교회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가 강조되고 한국주교단이 이에 대한 공동교서를 공표하자 서대주교는 『각자의 신분에 따른 소명을 깊이 인식하고 내적쇄신에 전력하기 바란다』는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평신도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써 그 역할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행한다는 교회 안 평신도 위치가 강조되자 그에 대한 사도직 수행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평신도의 날이 제정되었다. 그래서 각 본당에서는 그날 평신도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미사 중 사제대신 강론을 맡았고 또 평신도의 날을 보내면서 평신도운동을 위한 모금이 처음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68년 10월 이태리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병인순교자 29위에 대한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7명의 추기경, 25명의 대주교 및 주교, 5백여 명의 한국 신자들, 2천5백여 명의 불란서 신자들이 참석했고 시복선언이 끝나자 김수환 대주교의 주례로 대례 미사가 올려졌다.
교구에서는 교구 자체적으로 서정길 대주교, 교구사제단 공동집전으로 7천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복 경축미사를 봉헌하였다. 또 신자들은 당시 준공을 앞두고 있었던 순교자 기념성당 건립운동에 계속 참여하면서 순교정신을 생활화하자고 다짐했다.
69년에는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을 서임, 한국인 추기경 제1호가 되었다.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던 김추기경은 68년 노기남 대주교가 사업하면서 서울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대주교로 승임되었다가 추기경에 서임된 것이다. 김수환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은 세계교회역사에 동참하는 한국교회상을 제시해주었다.
이렇게 칠성본당에서의 몇 년은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도약을 시도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겪으며 간간이 말 타고 다니던 50여 년 전의 사목활동이 생각나 감회에 젖곤 했다.
신자들에게 있어 나의 모습은 푸근하지 못했었나보다. 고지식하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라 신자들이 많이 무서워했다. 경주나 칠성본당에서는 나이가 많았던 탓에 더욱 그러했다. 또 잡기(화투ㆍ운동)에 능하지 못했고 채소가꾸는 것이 취미였던 탓에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밭을 일구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특히 젊은 아이들은 근방에 오지도 않고 인사만 하곤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기 일쑤였다.
칠성본당에 있을 때 김영환 신부가 보좌로 부임하자 젊은이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신부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젊은이는 젊은 사람과 어울려야지. 왜관 본당에서 한번은 청년들이 축구장을 만들려고 단장해 놓은 땅에 씨를 뿌려 채소밭으로 가꾸었다. 이일로 청년들은 나를 따르고 따뜻하게 아껴주었던 것 같다. 많은 것이 부족하였음에도.
70년 11월 75세를 맞으면서 나는 대구대교구의 최초 은퇴신부가 되었다. 당시 제2차 바티깐공의회에서 주교의 은퇴시기를 75세로 정했는데 이것이 사제들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아쉬웠고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사제생활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주님의 뜻이기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