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형광등을 켜놓고 형일이네 방에는 칠성이 민호 일만이 형일이가 벽에 기대기도 하고 방바닥에 뒹굴기도 하며 야단법석이다. 저마다 집에서 방학 숙제책을 가지고 왔다. 형일이네 집을 지켜주면서 숙제를 하려고 …
그러나 아직 숙제책은 펼치지도 않고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거리는 끝이 없다. 한 가지의 이야기가 오래 계속되는 것이었다.
엉뚱한 것으로 뛰어 넘어가고 또 뛰어 넘어간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끝이 없다.
형철이와 유미는 외출 차림을 하고 벌써 몇 차례나 대문 밖으로 들락날락 하고 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도 형철이와 유미는 방 안에 앉아 있지를 못한다.
오늘은 셋째 토요일이다.
매달 셋째 토요일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큰댁 식구들과 형일이네 두 집 식구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일이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다.
언제나 큰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달마다 번갈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지난달에는 형일이네가 식사를 치뤘다. 그러니까 이번은 큰댁의 차례인 것이다.
어느 가문에서나 있는 일은 아니다. 형일이가 세 살 되던 해에 형일이네는 큰댁에서 분가를 했다. 그때에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두 집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그러한 풍습이 계속되면 두 가정은 언제까지나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대개의 가정은 형제가 결혼을 하고 또 분가를 하게 되면 두 가정은 해가 갈수록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사람이란 서로가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것으로 서로 이해가 높아지고 또 정이 두터워지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그러하지 않다. 서로가 마음 속에 높은 담을 쌓고 살려고 한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 그러니까 사회는 점점 차가와지고 있는 것이다.
대문소리가 나고 대문간이 소란해졌다. 밖에 아버지 마중을 나갔던 형철이와 유미가 아버의 양 옆에 매달리다시피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엄마 아빠 오셨어』유미가 소리쳤다.
유미가 소리쳤다.
안방 문이 열리고 동시에 형일이의 방문이 열리었다.
『자 빨리 갑시다』
아버지가 대청 쪽으로 가며 말했다.
『네』
어머니가 대답하고 형일이가 마당에 뛰어내렸다.
『민호랑 왔나 그럼 집 잘 봐 다구 우리 늦지 않게 올 테니…』
아버지가 형일네 방 앞에서 말했다.
『네』
아이들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형일이네 식구가 큰댁으로 떠난 다음 아이들은 대문을 잠그었다. 이제 저희들 세상이 된 것이다. 형일의 어머니가 주고 간 과자에 손을 댔다.
『잠깐!』
민호가 과자 그릇을 한쪽 손에 들고 소리쳤다. 두 아이는 웃으면 민호를 바라본다.
『함께 먹다 간 일만이와 나는 손해만 보겠어 우리가 한 개를 겨우 먹는 동안에 칠성이는 벌써 두 개나 먹는단 말야』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사실 욕심꾸러기 칠성이는 뭐든지 잘 먹는다.
『그럼 공평하게 나누자』
일만이가 말했다.
『그래야 해』
민호가 단연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럼 좋아』
욕심꾸러기 칠성이도 마지못해 찬성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공평하게 분배를 한다.』
저희 반 선생님의 흉내를 내며 말했다.
또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민호는 과자를 칠성이와 일만이 앞에 한 개씩 놓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자기 몫을 놓았다.
이렇게 하여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놓여졌을 때 칠성이가 민호의 과자 한 개를 슬쩍 자기 몫에 놓았다.
『안 돼!』
일만이가 웃음 섞인 소리로 외쳤다.
『과자 분배는 이거로 중단한다. 그 이유는 칠성이가 부정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과자 그릇의 과자는 모두 내가 먹기로 한다』
민호는 선생님처럼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안 돼!』
칠성이가 깔깔대며 벌떡 일어섰다.
민호의 뒤에서 팔을 돌려 민호의 목을 졸랐다.
『그럼 다시 분배를 할게』
민호가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칠성이가 제 자리에 앉았다. 과자 배급은 순조롭게 끝났다.
아이들은 드러눕기도 하고 또 벽에 기대어 과자를 먹는다. 방학 숙제책은 가져왔으나 숙제할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다. 이야기가 많다.
『형일아!』
밖에서 누가 불렀다.
『누구니?』
민호가 들창문을 열며 소리쳤다.
『형일이 없어』
경수였다.
『형일이네 모두 큰댁에 갔어 우리가 집을 지키고 있어』
세 아이의 얼굴이 들창에 가지런히 나타났다.
민호가 대문을 열어 주려 나갔다. 이제 아이들은 더욱 신나게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