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철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형철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남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형일이나 형철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 지금 경수 엄마 집에 있니』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나 올 때까지도 땅바닥에 쓰러져 막 울고 있었단 말야』
하고 형철이가 말했다.
몇 마디의 말로서라도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일 것 같이 생각되었다.
『집 잘 봐라 엄마 곧 올게』
하고 형철이 어머니는 바깥에 가 섰다.
경수의 어머니는 형철의 어머니와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이다. 경수네는 아랫동네의 철길 옆에서 살고 있다. 바깥은 바람이 좀 쌀쌀하다.
오늘 세 시경의 일이다. 경수의 어머니는 회사의 일로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갔다.
술집과 오락장들이 많은 골목을 빠져나가던 경수 어머니의 시선이 무심코 오락장 안으로 끌려갔다.
너댓 명의 소년들이 엎드려 벽 앞에 삼각형으로 쌓아올린 담배갑을 공기총으로 쏘고 있는 중에서 어쩐지 눈에 익은 노랑 털모자가 얼핏 눈에 띄었다.
『경수가』
경수의 어머니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어머니는 노랑 털모자의 아이가 자기 아들 경수가 아니기를 바랐다.
경수 또래의 아이가 노랑 털모자의 어깨를 툭 쳤다. 그와 동시에 노랑 털모자의 아이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경수 어머니의 가슴에서 무엇인가 쿵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노랑 털모자의 아이는 틀림없는 경수였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의 발길이 저도 모르게 오락장 안으로 옮겨졌다. 오락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경수 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냈다.
오락장은 여자들이 출입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수의 어머니는 공기총을 겨누고 있는 경수의 어깨를 두들겼다.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경수의 얼굴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경수는 별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체념하는 표정이다. 어머니는 경수의 목덜미를 잡고 바깥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자!』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경수가 앞서서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가는 어머니의 가슴은 몹시 착잡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남의 아이들은 몰라도 자기의 아들 경수만은 착하고 학교 성적이 좋은 소위 우등생이 되기를 바랐고 이 몇 해 학교 성적이 저학년 때보다 떨어지고는 있지만 자기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그러한 아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배신을 당한 어머니는 걷잡을 수 없이 실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앞서 가는 경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한편 경순는 이때까지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가며 한 반 아이인 준덕이와 함께 오락장을 드나들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잘못이 있으며 또 당연한 결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수는 어느 때엔가는 오고야 말 그때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며 자기가 오늘 이같이 된 것은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오락장에서 어머니에게 발견되었을 때에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었다. 그 자리에서 일종의 체념 같은 상태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빨려들어가듯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의 한쪽 손이 경수의 뺨에서 찰싹 소리를 냈다.
경수는 아찔했다. 그러나「아이구!」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꿋꿋이 서 있었다. 그러한 태도가 어머니는 더욱 미웠고 화가 치밀었다.
『야 이놈아 네가 어머니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또 찰싹 뺨을 갈겼다. 극도로 흥분하고 있는 어머니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눈에는 번갯불이 번쩍 튕겼으나 경수는 의지로써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
경수는 대항하는 기세로 어머니를 쏘아보면서 꿋꿋이 서 있다.
어머니는 겨우 국민학교 육학년밖에 되지 않는 아들의 그와 같은 태도를 발견했을 때 더욱 슬퍼졌고 울음이 왈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또 떨리는 손으로 경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놈아 이제 겨우 육학년밖에 안 돼가지고 오락장을 드나들어?』
한쪽 손으로 또 뺨을 후려 갈겼다.
그러자 경수는
『난 엄마가 없는 집은 싫었단 말야』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경수는 발악하듯이 외친 한마디에 어머니의 머리는 무거운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찡 울렸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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