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나 신자의 활동의 원리는 계시에서 나와야 하므로 우리는 먼저 계시에 나타난 세계상을 일별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드라마의 연속
천지창조의 개념이 없는 희랍 철학에서는 우주는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는 비역사적인 실체였으나 성서에 의하면 우주를 뜻하는「꼬스모스」라는 말은 없고 천지라든가 또는 모든 인간의 집단을 뜻하는「오이꾸메네」는 말로써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은 공간으로 한정된 것이고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시간 안에 제약된 피조물이며 시작에서 마침에 이르기까지 역사성을 띤 것이다. 이 세상은 정지하고 있는 막연한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과 그의 가장 귀중한 조물인 인간들이 연출하는 드라마의 연속이다. 이 거대한 드라마는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완결의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느님은 당신 말씀의 전능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창조된 우주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었고 선악의 이원론은 존재하지 아니했다. 창조는 인간을 위해서 된 것이고 인간은 하느님이 설정한 목적에로 이 우주의 완성을 위하여 협력하도록 소명을 받았고 따라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릴 책임과 권리를 받았다.
「죄」인간 자유의 실패작
우주사의 제2막에는 인간 자유의 최대의 실패작인 죄가 등장한다. 이 죄는 그의 시종인 악마와 죽음과 함께 우주의 조화를 파괴하였다. 죄악의 영향 하에 놓인 세상은 그의 근본인 조물주를 몰라보고 조물주가 설정한 목표에서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세상은 나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도 바오로는 사도 요한과 함께 타락된 세상에 내재하는 모순과 갈등을 선과 악의 변증법으로 설명한다. 죄악이 세상에 들어온 후부터 선과 악, 광명과 암흑, 생명과 죽음, 사랑과 미움 등이 투쟁하는 극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투쟁의 무기들은 물질이 아니고 인간 역사를 지배하는 종교적 윤리적 무기들이다.
드라마의 절정 그리스도
우주사의 제3막에는 구원의 드라마가 전개된다. 세상이 제 아무리 죄악으로 타락했을지라도 조물주의 절대적 구원은 흔들리지 아니했다. 그는 당신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 세상에 들여보내서 교세사를 펼치셨다. 조물주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과 화해하시고 인간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증명하셨다.
인간 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출현은 우주의 역사극을 그 클라이막스에 올려 놓았고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동일한 세상의 상극되는 양면을 묘사하게 하였다. 세상의 일면은 성신께 저항하면서 멸망에로 달음질하고 다른 한 면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민
신약성서에 있어서 세상은 끊임없이 이 두 갈래 경향으로 갈등을 계속하고 있으며 크리스도인의 현실적인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이 세상의 소유가 되어서는 아니되는 지상명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미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소유로 확정된 자들이기 때문에 다시 세상의 것으로 떨어져서는 아니 된다.
그러기에 참된 크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박해를 당할 운명에 놓여 있고 이 박해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사업의 원래의 목적에로 이끌고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국외자로 시시비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세상을 이용하여 세상의 진정한 해방을 도모해야 한다. 이것이 크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우주사의 대단원
구세사의 종점에서 우리들의 투쟁이 끝날 때 만물이 하느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 즉 부패와 죄악과 죽음에서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우주사의 종막이다. 묵시록이 말하고 있는 새로운 하늘과 땅이 하느님의 영광 안에 전개되는 것은 시간이 영원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이고 이로써 성서가 말하는 우주사의 드라마는 대단원을 이룬다.
성서에 계시된 세계상은 지극히 심오하다. 역사는 결코 인간들만의 사건의 연속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 이상의 힘과 인간 이하의 힘들이 인간의 힘과 함께 약동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진면목을 그 심층에서 음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 참여는 바로 이 세상을 위하여 이 세상에 맞서는 배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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