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없는 집은 싫었단 말야』
경수가 울먹이며 외친 한마디는 어머니의 가슴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걷잡을 수 없었던 흥분상태가 차츰 진정되어 갔다. 몇 해 전 직장에 다시 나가겠다고 했을 때 경수 아버지가 반대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몸이 오싹 떨린다. 날씨가 쌀쌀하기는 하나 그래서가 아니다. 남의 아이들보다 더 훌륭한 아이를 만들려고 했던 크나큰 야심이 산산히 깨지고 말았다.
모든 것에 있어서 남의 아이들을 밀어뜨리고서라도 자기 자식을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이다.
경수의 먼 장래를 위해 직업을 가졌던 어머니는 먼 장래는 고사하고 현재에 쓰디쓴 실패를 맛본 것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시 느꼈다.
어머니는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아빠가 이 일을 알면 얼마나 화를 낼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 닥친다.
어머니는 울먹이며 서 있는 경수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러자 경수는 더욱 서럽게 울먹인다.
『경수야 엄마가 잘못했다. 이젠 엄마가 집에 있을게』
어머니는 다정하게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경수의 귀에다 말했다.
그러나 경수는 울먹일 뿐 다른 반응은 나타내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한마디에 처음과는 달리 태도가 온순해지는 것 같이 보였다.
사실 경수 자신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지금까지의 반항적인 태도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형일이네 어머니가 경수네 집에 이르렀을 때 낯 모를 아이들 네댓 명이 대문에 달라붙어 빈 틈으로 뜰 안을 엿보며 뭐라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철이도 그와 같이 엿보고 집에 달려가서 저의 어머니에게 경수네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했던 것이다.
『얘들아 이제 모두 집으로 가거라』
하며 형일의 어머니는 대문을 안으로 밀었다. 경수 어머니는 밥하는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대문 안에 들어선 사람은 의외에도 형일의 어머니가 아닌가!
경수 어머니는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형일의 어머니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경수에게로 가서 어깨를 다정스럽게 두들기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수가 가엾기만 했다. 경수 어머니는 형일의 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자기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왔음을 당장에 알 수 있었다.
『형일의 엄마는 어떻게 알고 왔소?』
잠깐동안 침묵이 흘렀다.
『방으로 들어가요』
『자 경수야 들어가자!』
형일의 어머니는 경수의 손을 잡았다. 경수 어머니와 형일의 어머니는 안방에 들어가고 경수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경수의 어머니는 형일의 어머니에게 오늘의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했다.
형철의 어머니는 경수 어머니와는 허물 없는 친구이기는 하나 어린 경수가 빗나간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어머니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이라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적지 않게 조심스러웠다.
『오늘로 당장에 직장을 그만둬야겠어요.』
하고 경수 어머니가 말했을 때에도 형일의 어머니는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만 했다.
그러나 경수의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은 안도감을 가졌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여서 다행이지 뭐요. 나이가 더 먹고 사춘기에 들어서서 그랬다면 부모의 힘으로도 걷잡지 못해요』
형일의 어머니는 경수의 비행이 일찌기 발견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사실 부모를 무서워하고 또 고분고분 말을 들어줄 때가 그래도 바로 이끌어가기가 쉽다.
『정말 그래요. 일찌기 발견된 것을 나도 다행으로 생각해요.』
경수의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아이들에겐 엄마가 제일이어요. 또 경수네 같으면 뭐가 걱정이요 아빠가 착실하게 직장에 나가고
또 아이도 하나뿐이니 아이 장래를 위해서라면 더 자란 다음이라도 별로 늦지 않아요』
『모든 게 내 잘못이었어요. 설마 어른들이 드나드는 오락장 같은 데를 출입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누군들 자기의 어린 자식들이 그 같은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겠어요. 모두 자기 자식은 남의 아이들보다 착하고 영리한 걸로 믿는 게 부모들인데…』
『그럼요. 난 너무 큰 욕망을 가졌나 봐요. 아이가 하나니까 더욱 그랬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해요 더구나 이 집 경수는 외아들이래서 더욱 그래요.』
『난 가정교사를 두고 또 경수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걱정이 없을 줄로 알았어요 그리고 아이가 착하니까… 엄마가 늘 없는 집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지 뭐예요』
『그래 당해 봐야 알아요』
『회사에 가 봐야겠어요』
하고 경수 어머니는 일어서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형일의 어머니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어머니는 밖에 나섰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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