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의 지상 사물관
우리가 조물주를 존경한다면 그의 업적을 또한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상 사물들은 각기 고유한 존재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고유한 법칙에 의하여 움직인다. 비록 그들의 가치나 법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 존중해야 된다.
비관론자들은 이 세상이 손댈 수 없도록 타락했다고 보지만 성서와 교회는 그렇게 보지 아니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것이지만 그목표에 이르는 과정은 현세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구제불가능하다고 보면 인생은 영원히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신성한것과 세속적인 것을 준엄하게 분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종교나 교회는 신성한 일에나 종사하고 세속적인 사물은 완전히 세속에 일임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지상의 사물은 그 어떤 것이라도 배타적으로 신성하거나 배타적으로 속된 것은 아니고 그것의 존재 상황에 따라서 속될 수도 있고 성스러울 수도 있다. 홀로 하느님이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다.
■기본권과 인간관계
인간이 상대하는 사물 중에는 본시 그 자체로서는 종교적 윤리적 속성을 내포하지 아니하는 것이 있으나 그리스도교적 물리학이나 가톨릭적 수학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는 그것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어떤 분야이든지 필연적으로 종교적 윤리적 차원이 게재되어 있다.
회사를 어떻게 설립하고 어떤 기계를 설치하여야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며 시장 개척은 여하하게 할 것인지 기술적인 문제를 제기했을 때 교회는 아무런 해답을 권위 있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회사의 간부와 기술자 노동자들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나 기계와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서는 윤리적인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교회의 관심사가 된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인간의 기본권이 관계될 때 생활의 규범으로서의 신앙을 표방하는 교회가 도외시할 수 없는 사태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의 생존권,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 공서량속의 문제, 사회의 안녕과 질서의 문제, 사회 정의문제, 국제 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 마침내 인격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들은 다 교회의 소관 사항이다.
이런 문제들이 교회의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이런 인간관계들이 바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직결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인간을 인생의 목적에로 지향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목적에서 이탈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종교와 정치
교회가 사회에 참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 인간관계 중의 대표적 현상인 정치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항간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이 있다. 종교가 정치에 간여하면 종교가 타락하거나 박해를 초래한다는 역사적 경험에 그들의 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깊히 생각할 문제이다. 정치의 대종이 인간관계의 조정에 있다면 막중한 윤리성이 내포되기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완성을 지향하는 종교가 정치현상에 무관할 수 없고, 종교적 윤리적 차원을 도외시하는 정치라면 인간의 가장 깊은 면을 무시하는 권력행사에 불과하다.
종교와 정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동일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호 구별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 없는 종교는 이상주의에 불과하고 종교 없는 정치는 권모술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밝혀둘 것이 있다.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만 그것들의 구체화인 정권과 교회는 구별될 뿐 아니라 분리되어야 한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 그리고 정권과 교권의 관계는 차원이 다른 두 개의 개념이다. 정권과 교권이 고유한 임무를 망각하고 상호 혼합되거나 대립하여 작용할 때 그 결과는 비극으로 나타남은 역사의 교훈이다.
■ 교회의 사회 참여
교회가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가 무불간섭으로 아무 데서나 아무 것이나 교회 식으로 신성화 하자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사회의 모든 현상이 그 정당한 위치를 지키고 그 가치를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충고하고 원조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사회 참여란 바로 사회 안에 하느님의 질서가 이행되게 하는 데 있고, 이 질서는 인간이 영생을 추구하기에 적절하도록 모든 것의 사치 서열을 정돈함에 있다.
공의회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인간의 구령문제만 논할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더욱 인간답게 개조하는 데 이바지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더욱 인간답게 한다는 것은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는 말이 아님을 명심해야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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