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형일의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경수는 방안이 어둑어둑해지는데도 형광등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다.
-아빠가 알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미 어머니에게는 당했으나 이제 아버지에게 당해야 할 일이 경수를 불안하게 했다.
집을 뛰쳐나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을 쳐들기도 한다. 그러나 경수는 집을 뛰쳐나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했다.
경수의 눈 앞에는 지나간 일들이 이일 저일 자꾸만 떠오른다. 경수는 어머니가 없는 집이 싫어 차츰 빗나간 행위를 거듭하기 시작했으나 5학년 때까지만 해도 별로 대단한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집을 늘 비우는 어머니는 용돈을 자주 주는 것으로서 경수를 만족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경수는 용돈을 그런 대로 아쉽지 않게 썼다.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시내를 돌아다니며 군것질도 하고 만화 가게에도 가고 어떤 때에는 영화관에도 갔다.
그러기 때문에 집에는 가정교사가 오는 여섯 시 좀 전에야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러한 것을 알게 되면 큰 일이 난다는 것을 늘 생각했다. 아버지나 어머니 몰래 하는 일들은 경수에게 어떤 쾌감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일은 무척 경수를 즐겁게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늘 우울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나 가정교사가 와서 공부를 할 때이기 때문에 어머니 방으로 가는 일도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그것으로 마음을 놓고 경수에 대해서 별로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경수는 그러한 어머니의 태도가 몹시 불만스럽기도 했다. 어머니와 경수의 마음의 거리는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점점 멀어져 갔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어머니보다 더 늦었다. 아버지는 경수의 일에 대해 어머니보다 더욱 무관심했다.
경수가 6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느 날이다.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교문 밖에 나섰을 때 뒤에서 누군인가 경수의 어깨를 툭 쳤다.
용철이었다. 용철은 경수와 같은 반 아이다. 경수와 함께 가던 아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용철을 뒤돌아보았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용철은 경수에게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 경수의 목에 팔을 감고 몇 발자욱 뒤로 갔다.
그러한 경수와 용철을 보고 경수와 함께 가고 있었던 아이들은 저희끼리 앞으로 걸어갔다.
용철은 경수의 목에서 팔을 풀고
『나 어제 참 재밌는데 갔다.』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데로 갔다는 용철의 한마디가 경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디?』
하고 경수가 달라붙었다.
『넌 아직 그런 건 몰라』
용철은 역시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경수는 용철이가 재미있다는 곳이 더욱 알고 싶어졌다.
『용철아 어디야?』
『오락장!』
용철은 짧게 말하고 또 웃었다.
『오락장?』
경수는 놀란 소리를 질렀다.
경수는 영화관에는 몰래 자주 갔었으나 오락장 같은 곳은 자기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도 돼?』
경수가 의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용철은 자신있게 말했다.
『정말?』
『너 어제 했단 말야.』
누가 먼저 걷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경수와 용철이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 거야』
경수는 오락장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공기총 처음 쏴도 잘 맞아.?』
하고 경수가 물었다.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난 어제 담배 한 갑을 땄단 말야』
용철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말?』
『그럼』
경수는 용철이가 담배 한 갑을 땄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용철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도 못할 것 없다고 생각되었다.
『너 돈 있어?』
경수가 말했다.
경수는 오락장에 마음이 끌렸다. 경수에게 돈만 있다면 오락장으로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돈?』
용철은 호주머니를 툭툭 쳤다.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으니 염려할 것이 없다는 표시이다.
용철이네는 큰 음식점을 하고 있었다. 용철은 저희 반에서 용돈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경수는 5학년 때부터 용철이와 자주 어울리었다. 영화 구경도 대체로 용철이와 함께 갔다.
『그럼 가!』
경수가 용기를 냈다.
『좋아!』
용철이가 밝은 소리로 외쳤다.
경수와 용철의 빨라진 걸음은 오락장들이 많은 시장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경수는 이렇게 해서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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