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참여의 의의
교회가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지상에 영주할 낙원을 건설한다는 뜻이 아님을 말하였거니와 그런 낙원은 영원히 도래하지 아니할 것이다.
환상적인 자족감에 빠져 있는 현대 세계에 대하여 그 환상을 깨고 스스로의 본래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데 교회의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찬란한 물질문명의 와중에서 현대인들이 인간의 승리를 구가하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서 헤매는 처지를 깨우치는 노력이 사회 참여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와 같이 영원과 종교와 신에 대하여 냉담 무관심하고 현세와 물질과 인간에 열중하는 세대에 살면서 현대인은 오히려 그 어떤 영원한 것, 절대적인 것, 초월한 것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보다는 물질적으로 다소 향상된 생활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은 점점 더 야박해지고 고독해지고 불안해지고 있다.
이 불안은 지정학적 불안만이 아니고 인생 자체에 대한 회의에서 나오는 불안이다.
■종교에 대한 기대
뜻있는 인사들은 막연하게나마 종교에 특히 가톨릭에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슨 해결책을 기대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그들의 기대는 물질생활의 향상이 아니고 생활의 의미를 그리고 인생의 지표를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한국에서 교회의 사회 참여의 가장 큰 목표로 설정할 것은 유물론의 극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유물론이 공산주의적 유물론이든지 자본주의적 유물론이든지 상관없이 인간을 인간 이하에로 타락시키는 이 유물론의 극복 없이는 오늘의 한국 사회는 구제 불가능하다.
이 나라는 경제 제1주의로 근대화를 이룩하려는 중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
건전한 인간성의 계발을 동반하지 아니하고 물질생산의 증가에만 치중한 결과가 오늘의 모든 사회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이 점을 정부나 민간의 지도자나 대중에게 깨우칠 본분을 저버릴 수 없다.
독자들은 이런 운동의 방법을 물을 것이나 각 분야의 고유한 방법들은 각 분야별로 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거니와 근본적인 방법 하나를 지적하자면 사회에 대해서 발언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먼저 유물적인 행동 방식을 지양하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나쁜 의미로서의 완전무결한 축소판이다.
포교지방일수록 포교활동을 뒷받침하는 물질적인 수단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성당 강당 학교 병원 등을 많이 짓는 것이 포교사업의 전부가 아니라면, 건물은 올라가는데 신자들의 마음은 내려가는 현상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내적 개혁
전반적으로보아 한국 성직계가 부유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부 지역에서 일부 성직자들이 사치하고 방종하는 평이 들려오고 있으며 그 반면에 교회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처우는 인간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교회 안에 인간관계도 먼저 개혁해야 될 큰 일이다. 교회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신자의 교회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겠는데 평신자들의 수준 미달이나 분수를 망각한 처사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도 성직자들의 과잉 권위의식이 평신자의 교회 참여를 저해하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교회 안에서 먼저 물질주의의 극복과 인간관계의 정상화를 통한 사회 정의가 이루어졌을 때 사회에 대해서 힘있는 발언이나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자의 역할
교회의 사회 참여는 성직자들의 현실 참여와 꼭 같은 말은 아니다. 교회의 공동체가 인간 공동체 안에서 복음정신을 구현시키는 것이 사회 참여이지 반드시 모든 성직자들이 사회 최전선에서 구체적인 투쟁에 뛰어들라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의 본분은 현세에서 영원을 상기시키고 물질 안에서 영성의 우위를 깨우치고 세속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회 참여에 있어서는 사회의 각 분야에 삽입되어 살고 있는 평신자들이 오히려 주동 역할을 해야 되고 그들의 의기를 고무하고 그들의 의논 상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물론 성직자들도 교회의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좋은 뜻 하나만 가지고 구체적인 사회문제나 산업문제에 뛰어들어서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온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그 본연의 사제직에 충실하여 신자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실지로 교회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는 길이며 이렇게 훈련된 평신자들의 복음적인 사회활동을 통해서 교회의 사회 참여는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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