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샀다. 나는 물건을 고르다가『더 희고 깨끗한 것을 하나 주시오』하고 점원에게 청했다. 점원은 이것저것을 찾다가『이것이 제일 희고 좋은 것입니다』하고 주는 것을 사들고 돌아오다가 다른 상점 쇼윈도를 보았다. 더 희고 깨끗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같은 흰색이라면 이 흰색이나 저 흰색이나 같을 것인데 왜 이것과 저것은 같은 흰색이면서도 다를까? 하고. 그러다가 집에 와서 흰색의 물건들을 비교해 봤다. 흰 벽, 흰 천정, 흰 책보, 흰 책장, 흰 얼굴, 흰 손, 흰 구름, 흰 손수건 이런 것들을 비교해 보고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흰 것이라도 흰색이 가서 붙을 바탕 여하에 따라 흰색이 달라진다. 사람의 얼굴이 희다 할 때와 손수건이 희다 할 때는 엄청난 차이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흰색이란 도대체 몇 가지가 있을까고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흰색 그 자체는 한 가지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흰 것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하나밖에 없는 흰색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다만 흰색이 어떤 물건에 가서 붙은 것만을 보고 희다는 개념을 우리는 가진다. 즉 흰 책 흰 벽 흰 구름 하고, 비록 우리가 그 본질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흰색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엄청난 사실에 부닥쳤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사람 덕망 있는 사람 의로운 사람 겸손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착하고 의로운 것이지 선과 의의 자체는 아닐 것이다. 흰색에 구별이 있듯이 더 착한 사람도 있고 덜 착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안 보이는 흰색의 본질과 같이 선의 본질과 덕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흰색 자체가 없으면 흰 벽도 흰 얼굴도 없듯이 선이나 혹은 덕 자체가 없으면 착한 사람도 덕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의 극치, 덕의 극치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시니 모든 것의 근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좋은 것의 극치요 최상급인 것은 창조주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고 하느님(창조주)만이 지극히 착하시고 지극히 덕망 있고 지극히 성스러운 분이시다. 우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역시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조금 분할 받은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존재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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