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춥지도 않더니 갑자기 예상을 뒤엎고 날씨가 차겁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 속을 혼자 걷자니 뜻하지 않게 옆에서『한 푼 보태 주십쇼』하고 남루한 옷에 추위에 떨며 할아버지가 손을 내민다. 순간 불쌍하다고 느꼈으나 나도 가진 것이 없어 걸어가는 판이라 도리어 내가 당황했다. 거친 손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다. 나는 얼핏 츠르게네프의 산문시가 생각났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미안합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그럽니다. 다음에 뵈올 때 드리지요』했더니 그 걸인 할아버지는『고맙습니다. 받은 것보다 더 고마워요』하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거기로 골목길을 들어서서 걸으며 가만히 생각해 봤다. 세상에는 왜 악이 있고 세상에은 왜 가난이 있나 하고. 만일 하느님이 계시다면 무엇 때문에 저런 불쌍한 할아버지를 돌봐 주시지 않을까 하고 원망스러웠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요란한 네온이 번쩍거리는 네거리가 나온다. 찬란한 불빛 밑에는 유행의 첨단을 걷는 남녀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니 이 얼마나 모순된 세상인가 하고 한 번 더 놀랐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행복(?)한 얼굴들을 하고 길에 가득 찼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만일 하느님이 계시고 또 인자한 분이시라면 어떻게 이런 불균형한 세상을 창조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악을 저지르고 불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수가 많다. 남이야 죽든 살든 나만 돈벌이 하면 된다고, 부정약품, 부정식품 하고 매일 같이 신문에 나는가? 생각하니 인생에 환멸을 느낀다. 그러다가 과연 인간이 당하는 고통이나 설움은 하느님의 탓인가 아니면 인간의 탓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탓이 하느님에게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면 우리는 이 고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옛날 말에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운수소관이라는 우리 사회의 타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포기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를 포기하는가? 하고 생각을 하다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은 그 자유를 잘 사용함으로써 인간 완성을 기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잘못 씀으로 해서 당하는 고통은 인간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첫째로 인간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받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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