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겨울방학도 다 끝나고 오늘이 개학날이다. 형일이 형철이 그리고 유미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머니는 개학날을 앞두고 학교 갈 준비를 미리 해 놓으라고 말했으나 아이들은 무엇보다 숙제를 다 했기 때문에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형일이와 유미는 오늘 학교에 가지고 갈 통지표며 숙제장을 다 챙겨 놓았다.
그런데 형철의 숙제장은 어디에 들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기 책꽂이나 서랍은 물론 형일이와 유미의 책상까지도 모조리 뒤졌다.
그래도 찾는 숙제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철은 벌써 안방과 저희 방을 몇 차례나 들락날락했다.
형철은 조급해지기만 한다. 며칠 전에도 어머니가 학교에 갈 준비를 해 놓으라고 했을 때에도 숙제를 다 해놓은 숙제장은 자기 책꽂이에 있다고 생각하고 태평스럽게 지냈던 것이다.
『어디 뒀는지 잘 생각해 봐!』함께 찾고 있던 형일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책꽂이에 있었단 말야』
형철은 울상이 되어 보리 먹은 송아지처럼 씩씩거리고 서 있기만 하나 형일은 그래도 어디 들어 있나 해서 또 형철의 책꽂이며 서랍을 뒤져본다.
『형철아 숙제장을 아직 못 찾았니?』
어머니가 아이들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없단 말야』
마치 어머니가 잘못해서 숙제장이 없어진 것 같은 말투다.
『공연히 심술 부리지 말구 잘 찾아봐』
어머니는 웃음 섞인 소리로 말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형철은 어머니가 저희 방에 나타나자 어머니가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학교에 갈 시간은 다 돼 가는데 숙제장은 나오지 않는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형철아!』
하고 덕호가 형일이네 방문을 열었다.
『형철아 네 숙제장』
덕호는 숨찬 소리로 말하며 숙제장을 내밀었다.
『이거 형철이 거야』
형일이가 손에 받아들었다.
『응, 형철이 거야』
덕호는 형철이와 같은 반 아이다.
『병신 그래 가지고도 집에 뒀다고…』
『왜』
멋적게 된 형철은『왜』하고 대들 수밖에 없었다.
형철은 물론 함께 찾던 형일이나 옆에 서서 바라보고만 있던 유미도 이제는 마음이 놓였다.
『내 숙제장 찾는데 나왔어』
누구보다도 형철은 기뻤으나 금시에 반색할 수는 없었다. 그대로 시무룩한 표정이다.
『자 빨리 가자!』
형일이가 먼저 밖에 나서며 말했다.
형철은 며칠 전에 숙제를 다 했었다.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하던 차에 덕호가 숙제장을 빌려 달라고 했다.
형철은 저희 집을 찾아온 덕호와 함께 숙제장을 갖고 덕호네에 갔다. 덕호는 제가 알지 못해서 하지 못한 것을 형철의 숙제장을 보고 써 넣었다.
그때 아랫동네에서 풍작풍작 음악소리가 바람에 실리어 왔다.
형일이와 덕호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으로 웃었다.
두 아이는 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언덕을 바람 같이 뛰어내려갔다. 철도 옆길에서 약장수가 약을 팔고 있었다. 한 손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확성기를 통해 풍작풍작 하모니카 소리가 크게 울려나왔다.
등에 메고 있는 북이 쿵쿵 울렸다. 체조를 하는 것처럼 다리를 높이 올리며 걷는 그것에 의해 발에 맨 끈이 줄었다 늘었다 하며 북채가 북을 치는 것이었다.
형철이와 덕호는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몰랐다.
정말 재미있다.
두 아이는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비비고 들어가 맨 앞에 섰다. 두 아이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을 했다.
약장수는 소화에 잘 듣는다는 병에 든 약을 몇 병 팔고서는 그 자리를 뜰 차비를 했다. 약장수는 시장 쪽으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제각기 갈 곳으로 헤어져 갔으나 아이들은 약장수의 뒤를 따라갔다.
물론 그 속에는 형철이와 덕호도 있었다.
두 아이는 시장 근처에서도 한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약장수의 재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약장수가 그곳을 떠날 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형철은 돌아오는 길에 숙제장을 가지고 집에 올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대로 덕호와 헤어져 집에 왔으며 그 후에도 숙제장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형일이 형철이 유미 그리고 덕호는 언덕을 내려가서 학교로 가는 서쪽 길에 들어섰다.
학교 길은 아이들로 꽉 차 있다. 울긋불긋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어난 것 같다. 이 길은 어제만 해도 한산했다.
『형일아 같이 가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반의 혁이었다.
『언제 왔니?』
형일은 반갑게 소리쳤다.
형일이가 걸음을 멈추자 형철이 덕호 그리고 유미도 그 자리에 섰다.
방학이 시작되자 서울에 있는 삼촌 집에 가 있었다.
혁은 숨차게 뛰어오자 형일의 어깨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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