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번호로 열심 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던 70여년의 사제생활 희고를 끝내려한다. 그동안 연재를 하면서 가물가물 잊혀져가던 옛날 일들이 떠올라 혼자 웃음 짓기도 했고 아쉬움에 젖기도 했다.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충실한 회고가 되지못했다. 양해할 줄 믿는다.
은퇴를 한 후 나는 주교님께 청원해 순교자들의 뼈가 묻혀진 칠곡 동명 한티에서 살게 되었다. 주교님은 이러한 나의 뜻을 받아들이시어 공소를 만들어 주셨다. 나는 한티에 머물면서 대구대교구의 성지중 하나인 이곳에 성당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주교님께 동명에 성당을 짓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드렸고 주교님도 이에 찬성하시어 성당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동명에는 교우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고 칠곡에 소수의 교우들이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에 터나 잡아 놓으려고 했는데 눈감기 전 성당건립을 보게 돼 여간 기쁘고 다행스럽지 않다. 주님을 위한 사업이어서 인지 동명성당건립 때도 여러 사람이후원을 해주어 무사히 건립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교우수가 많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걱정이나 팔공산 개발과 가산산성 개발로 성당 옆 도로가 확장된다고 하니 동명성당도 얼마 안 있어 좋아지리라 낙관한다.
은퇴한지도 20여년이 흐른 요즈음 찾아오는 후배신부나 신자들을 대하고 얘기를 듣노라면 신자들이 옛날에 비해 월등히 많이 알고 활동도 활발함을 느낀다. 매스컴 등의 발달로 인한 당연한 결과겠지만. 어떤 신자는 신부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구교우들은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그저 신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다.
공의회 이전 미사 때는 신부와 신자가 따로 놀았다. 그리고 신자들은 암송을 많이 하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줄 알 정도로 무지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그들은 순박하고 열심했다. 지금은 신자들이 많이 알기는 해도 실행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신부들이 부족하여 그전처럼 엄격하게 신자관리를 못하니 어쩔 수 없지만.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달고 기도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기도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으니 신앙이 금새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아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로 실천할 수 있도록 믿음을 기도로써 키워야 한다.
이미 언급한바 있지만 후배신부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내가 사제로 서품되어 사목할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원자폭탄 앞에 돌도끼를 갖다놓는 격이다. 공부도 우리는 국문을 겨우 깨우친 채 신학ㆍ철학을 공부했다. 가정윤리 등의 자세한 과목은 구경도 못했고.
지금 신부들도 나름대로의 힘든 점을 갖고 있겠지만
하여튼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신부들을 보면 대견하다. 후배신부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주교님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구가 잘되는 길이고 교회를 평화롭게 하는 일이다. 순명이 않으면 개신교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신부들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요즘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나라가 많이 혼란한데 이런 때 교회는 가난한 이를 도와준다는 교회본질의 사명을 실천하고 참정의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정의구현이야말로 교회의 일인 것이다.
특별히 사목생활을 잘하지 못한 탓에 뚜렷이 아쉽거나 못다했다고 느낀 점은 없다. 일제 때가 많이 힘들었으나 그래도 내 경우는 다른 신부들에 비행 대우를 받은 편이였다. 감옥에 갇히는 등의 고생도 없었고. 나의 하루일과는 미사ㆍ기도ㆍ채소 가꾸기 등이다. 책을 보면 눈이 많이 아픈 탓에 글자는 잘 볼 수 없지만 귀는 잘 들리는 편이다. 그래서 TV뉴스는 열심히 듣는다. 이나마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 퍽 다행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거동하는 것이 불편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고역이다 . 내 또래가 없어 적적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쳐야 하는 것이 보통 미안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용히 삶을 정리할 뿐이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음이, 기억하고 찾아와 주는 이도 가끔 있어 그들과 세상이야기도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하다.
두서없는 글을 쓴데 대해 독자들의 배려 있으리라 믿으며 이로써 그동안의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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