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충돌은 종교적 예절을 지키는 단식재계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 충돌을 벌였다. 정신은 다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재계를 지키는 것이 재계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가리어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율법자체가 절대적이 아니라 율법은 어디까지나 실증법으로서 자연법 또는 신법(神法)의 요청이 있으면 관면(寬免)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새 법이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밀밭사이를 지나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먹었다. 이것일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율법문제를 따지기 전에 「어느 안식일에」라는 말의 해석부터 하자. 어떤 루가복음 사본에는 「제2일이 지난 첫 안식일에」라고 되어있다. 이 말은 사도초생교회의 유대아 계통 신자들이 아니고는 알아듣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도초생교회는 이미 안식일을 토요일로 하지 않고 그 다음날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정하고 그 날을 쉬는 날로 정하고 있었다(고린전 16,2 : 사도 20,7 : 묵시 1,10). 그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활날(구약의 과월제)과 성신강림날(구약의 오순절) 까지는 50일이고 주간으로 7주간이다. 그러므로 성신강림부터 역산하여 50일을 꼽으면 부활주일 다음날부터 셈해야 되고 그 날은 제2일(오늘의 월요일) 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2일이 지난 첫 안식일」은 오늘의 부활후 첫 토요일에 해당된다.
이 사본이 확실한 것이라면 「제2일이 지난 첫 안식일」이란 표현은 유대아 계통 교우들에게 레위기의 기사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너희가 곡식단을 흔들어 바친 그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만 일곱 주간을 보내고 맞게 되는 그 일곱째 안식일 다음날까지 세면 오십일이 될 것이다. 그때 너희는 새로운 곡식 예물을 야훼께 바쳐야 한다』(레위23장,15~17).
이제 율법문제로 들어가자. 바리사이파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는 반율법행위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비볐다는 것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안식일에 걷는 행위도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에서 금지사항이 39개조나 되었다. 가벼운 산책은 할 수 있되 1km 이상을 걸으면 율법을 파괴하게 된다. 그러니 밀밭사이를 걸어가신 것이 고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이 일이 이루어졌다. 아마도 회당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최근까지도 열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시계태엽을 감지 않으며 편지를 뜯지 않으며 불을 지피지 않는다. 예수 당시에는 이보다 더 엄격히 지켜야만 했다. 율법의 조문자체는 일반적인 명령만 했지만 대대로 전해지면서 사소한데까지 까다로운 규정이 덧붙혀졌다.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등은 안식일법 규정을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짐으로 만들었다.
밀 두 이삭 이상을 따면 그것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행위이다.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것은 곡식을 타작하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자연도 안식일 법을 지켜야 했다. 안식일에 떨어진 과일은 먹어서는 안 된다. 안식일에는 나무에도 올라가서는 안 된다. 과일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안식일에 난 계란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갈 때는 병자를 간호할 수 있고 허기졌을 때는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따먹어도 괜찮다(신명 23, 26). 그래서 마태오복음서는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따먹었다고 했다. 따서 비볐다는 것으로 고발당하신 예수께서는 이 대목에 대하여 직접적인 해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다윗이 배고팠을 때에 성전에 들어가 제관들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빵을 먹었다는 대목을 읽어보지 못하였소(사무상21, 1~7). 그리고 안식일에 제관들이「필요하다면」율법규정을 어겨도 된다는 대목을 읽어보지 못하였소?』(민수28.9이하). 예수께서 일반 민중에게 성경이야기를 인용하실 때에는 『당신들은 성서에 이러저러한 제목에 대하여 읽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소』라고 하신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들은 율법전문가들이고 직접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읽어보지 못하였냐고 물은 것이다.
율법이 하느님의 법이라면 그것은 사람을 잘살게 하려는 것이지 사람을 율법으로 얽어매서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성전이 신성한 것이라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며 거룩하게 되기 위한 것이지 사람이 성전을 위하여 살기위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성전보다 더 크다.
여기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의 「사람」과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사람의 아들」과는 당시의 랍비들의 용어에서는 같은 뜻의 말이다. 그러니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사도교회에서 예수의 부활 후에 그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었고 그 「사람의 아들」은 세상이 끝날 때에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시키려고 구름을 타고 오실 분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에게는 사람의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고(마르 2.10)성진과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릴 권한이 있다. 그래서 사도교회시대부터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主日)로 하고 이날 사랑의 식사를 나누며 영적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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