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언제 왔니?』
형일이가 반가운 소리로 물었다.
『어제 밤차로 왔다. 』
혁은 무척 명랑하다.
『그래 재미있었니?』
『응』
혁은 단지「응」하고 대답했으나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보아 너무나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아이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울 크지?』
형일이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그럼!』
형일이도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도 서울에 가서 오래 있다가 돌아온 혁이가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러러보이기까지 했다.
혁은 서울이 처음이 아니다. 5학년 때의 수학여행 외에도 방학 때마다 거의 서울 삼촌 댁에 가곤 했던 것이다.
형일은 자기들도 혁이네처럼 서울에 친척이 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형일은 아직 서울에 가본 적이 없다. 5학년 가을 형일이네 반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그러나 형일은 그때에도 가지 못했다.
그때 형일은 공교롭게도 높은 언덕에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쳐 며칠 동안 학교를 쉬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생 처음 가려던 서울 수학여행에서 빠지고 말았으며 그 일이 오래도록 얼마나 안타까왔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그때 6학년에 올라가면 갈 수 있지 않느냐고 형일을 달랬다. 그리고 형일이도 그 때에는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학년의 수학여행은 우리나라에서 명승지로 유명한 속리산으로 갔었기 때문에 형일의 서울 구경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바람 없는 날 햇볕이 따스하다. 멀리 보이는 서쪽 산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얗게 바라보이던 눈이 지금은 자취도 없다.
『나 말야 중학교 삼촌댁 에서 다니기로 했어』
혁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삼촌 댁에서라면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아닌가!
『야 넌 참 좋겠구나』
하고 형일은 말했으나 가슴 속은 이상하도록 복잡해지기만 한다.
『금 서울에 가서 중학교 다녀?』
동생 형철이가 놀란 소리를 지르며 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래』
『야 신나겠다』
형철은 제가 서울에 나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기나 하는 것처럼 좋아한다.
형일은 서울에 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혁이가 참으로 부럽다. 서울에 삼촌이 살고 있다는 단지 그것 때문에 혁이가 딴 세계의 아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형일은 혁이보다 자기가 성적이 훨씬 우수하며 또 고등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다니고 대학은 서울에 가서 다니게 하겠다고 한 아버지의 말이 생각나 혁이가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공부하게 된다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로는 생각되지 않기도 했다.
형일은 속으로 순희네 오빠의 일을 생각했다. 순희네는 형일이네 동네에서 첫째 가는 부자였다.
-사네놈은 서울에 보내고 말새끼는 제주도에 보내야 하는 거요.
혁의 아버지는 이 같은 말을 누구에게나 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순희 오빠가 국민학교를 나오자 순희 아버지는 순희 오빠를 서울로 보냈다. 돈이 얼마든지 있는 집이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희 오빠는 처음 지망한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국민학교 6학년을 한 해 재수를 했다.
다음 해 전 해에 떨어진 중학교에 다시 응시했으나 또 떨어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중학교에 들어갔고 그 후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에는 잘 들어갈 것 같지 못하다는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형일은 자주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서울에서 가장 입학이 어렵다는 상과대학에 들어간 종길이 형님의 일도 형일은 알고 있었다.
순희 오빠와 종길이 형님의 이야기가 동네의 화제가 되고 있던 어느날.
『서울에 가서 중학을 다닌다고 다 되는가 다 자기가 할 탓이지…』
하고 웃던 아버지의 말도 떠올랐다.
형일의 아버지도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서울에서 가장 어렵다는 공과대학을 나왔던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알고 있는 형일은 혁이를 그다지 부러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학교가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형일아 니네 비둘기 길러?』
혁이가 불쑥 말했다.
『누가 그래』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형일은 아까보다 마음이 밝아진다.
『내 동생이 그랬어』
『아, 아직은…이제 기를 거야』
참새들을 날려 보내던 날 형일이가 앞으로는 자유롭게 기를 수 있는 비둘기를 기르겠다고 한 말을 형철은 동네에 다니며 자랑했던 것이다.
그러한 소문을 듣고 혁의 동생은 그것이 부러웠던지 자기형 혁이가 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형일이네가 비둘기를 기르고 있다는 듯이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형일은 이 얼마 동안 비둘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온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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