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회 정의 구현과 아울러 교회 쇄신을 위해 전개됐던 한국「빡스 로마나」주최「크리스찬 문화운동」은 2월 6일 원주를 비롯, 8일 수원 아카데미, 11일 광주 가톨릭문화관, 13일 부산 데레사여고, 16일 대전 가톨릭문화관서 각각 개최됐는데 특히 이번 처음으로 시도된 문화운동 프로그램 중 연극 이동진 작 최종률 연출「금관의 예수」는 공연한 곳마다 관객들의 절찬을 받았다.
더욱 원주서는 당일 1회의 연속공연이 있었고 대전서는 대전 MBC 방송국「충정의 메아리」시간에 중계되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깊은 감명을주었다.
거의 1개월 간의 지방 순회를 마친 후 서울에서는 지난 3일 드라마센터에서 오후 3시와 7시, 2회에 걸쳐 공연됐는데 성직자 평신도는 물론 가톨릭의 정의 구현 운동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 및 저명 인사들이 참석, 연극계의 보기 드문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관중들은 장이 바뀔 때마다 구구절절 신랄한 풍자적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단 하루만의 공연을 아쉬워했다.
그런데「금관의 예수」는 형식과 위선에 가득 찬 껍데기 그리스도인에 대한 날카로운 질책을 목표로 한 작품이다.
◆류치진-간결해도 깊은 수작 격하돼 가는 교회 신랄히 비판
한국「빡스 로마나」주최인 연극「금관의 예수」공연을 3월 3일 밤 드라마센터 극장에서 보았다. 무태에는 머리에 금관을 얹은 콩크리트 제실물대의 예수 입상 하나 그 입상 주변에서는 문둥이ㆍ거지ㆍ창녀ㆍ순경ㆍ사장ㆍ수녀ㆍ신부 등 가지각색의 인간상 병폐를 풍자한다.
그러나 예수는 외롭다.
왜?
예수는 황금이나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예수를 팔며, 그러기 위하여 입상의 머리 위에 금관을 씌워놓고 있는 것이다. 정작 예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사람들-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격리되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고와 굶주림에 못 견디던 문둥이가 하루는 콩크리트 예수의 입상 머리 위에서 금관을 발견한다. 그 황금 덩어리가 탐이 나서 훔치려 든다. 콩크리트 입상은 입을 연다. 『가시관이 마땅한 내게는 금관은 무용하다. 그 금관을 가지고 가라. 이왕이면 내 전신을 싸고 있는 콩크리트만 벗겨 나를 황금광과 권력광으로부터 해방시켜 나를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늘의 격하되어 가는 교회에 대한 대담하고 신랄한 비판인가? 간결한 가운데 깊고 함축성 있는 수작이다. 이 작가(이동진)의 장래가 촉망된다.
이 공연에 즈음하여 발표한「가톨릭 문화운동」이란 취지문에서 한국「빡스나」는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인간, 죄악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인간, 편견 없이 서로 사랑하는 인간, 어떠한 대가로도 매매될 수 없는 인간, 궁극에 가서는 하느님과 일치되어야 하는 인간.
가톨릭의 이상이 추구하는 인간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만이 가톨릭 문화 창조의 원천이 될 것이고 조직적이고 집중적인 문화「운동」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교회는 영원히 불완전한 교회이다. 이 땅의 가톨릭적 상황은 정말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 받은 소외 당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봉사하고 있는가?』
「금관의 예수」는 이상의「빡스 로마나」의 정신을 적절하게 무대화했다. 가톨릭 문화운동의 건전한 앞날에 기대하며 이 연극 집단의 장래성에 크게 기대한다.
◆류민영-위선적 그리스도인을 질책 1개월 간 전국을 순회 공연 현실적 가톨릭 고뇌를 보는 듯 종교의 무력 꾸짖어
3월 3일「드라마센터」에서는 색다른 크리스찬 문화행사가 있었다. 한국「빡스 로마나」주최, 가톨릭시보사와 한국정의평화위원회 후원으로「금관의 예수」(이동진 작 최종률 연출)라는 가톨릭 비판극을 공연한 것이다. 예수 석고상과 문둥이ㆍ걸인 부부 그리고 신부와 수녀를 등장시켜 황금만능주의에 의한 사회정의의 타락과 위선, 또 이와 같이 부패한 사회 현실 앞에서의 종교의 갈등과 무력을 매도한 작품을 바로 가톨릭 단체에서 주최하여 공연한 것은 확실히 충격적이다.
연극은 행동의 예술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또 빠르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종교단체에서는 옛날부터 전교의 수단으로 연극을 많이 이용해 왔다. 그러니까 종교단체에서 하는 연극 내용이란 대개가 종교의 숭고성과 존엄성 나아가서는 신성으로써 교훈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비종교인이 쓰고 일반 극단에서 종교를 테마로 한 작품을 공연할 때는 거의 종교의 위선 무기력과 타락을 질타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경우가 제2차 세계대전 중「나찌스」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교황청이 방관했다고 하여 가톨릭(神)의 침묵을 비판한「신의 대리인」(톨후호크후트 작)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개인이건 단체이건 간에 그들 자신의 치부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 본능이다. 그런데 가톨릭 단체에서 그들 손으로 현실의 부정과 부조리 앞에 가톨릭의 무기력을 고발한 내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것은 확실히 충격적이고 용감한 것이었다.
자간의 가톨릭 사회정의운동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오늘날과 같은 한국 현실 속에서의 가톨릭의 고뇌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했다. 종교의 구궤의 목표 중의 하나가 사회 정의의 현실이라고 볼 때 종교가 항상 스스로를 매질하는 것은 퍽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 가톨릭이 서양에서 전래하여 토착할 때 상당히 많은 피를 흘린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금관의 예수」가 신랄히 비판한 것처럼 한국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처럼 그렇게 부패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작품 자체는 퍽 말숙하다. 대개 풍자극에서는 상징적인 수법을 쓰는데「금관의 예수」는 풍자극이면서도 리얼리즘적인 정공법을 쓰고 있어 연극으로서는 생경하고 세련되지 못한 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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