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그리스도인
사회 정의를 효과 있게 믿지 아니하고 근본적인 자유와 인간의 품위를 나타내지 않는 교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새 의식에 창문을 활짝 열기를 거절하는 교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또 그 사랑 때문에 수백수천만의 권리를 박탈 당한 자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는 자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이다. 무사안역 사치 낭비 퇴폐풍조 등은 현 사회 구조 안에 있는 참 그리스도교 실천과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사랑 봉사 희생 등은 우리의 모든 노력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힘드는, 그리고도 전적 사명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충돌 긴장 모순 등을 내포한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을 그들이 실행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용기 없는 교회
우리는 교회가 토론과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실을 통탄한다. 만일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두려워해서 아니 될 것이다. 교회는 사회 개혁 개인의 구원을 위해 단안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사회 불의를 항구화하는 원인이 되는 이러한 구조를 뒤엎는 사상을 활발히 지지해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변화를 위해 사회 봉사를 사회활동으로 대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는 위기가 지나간 다음이 아니라 참으로 문제가 있을 때 소신을 주장하는 현대적인 힘이 되어야 한다. 제2차「바티깐」공의회 문서에도 불구하고 조속히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도전적인 태도에 발 맞추어 걸어가고 때로는 그보다 앞서 갈 수 있어야 한다. 인간 발전이 언제나 건전하고 완전하고 생활하고 동적인 것이 되고 어떠한 장애에도 결교 방해되지 않도록 충만한 표현의 자유가 하느님의 백성을 보장해야 한다.
■선의의 형제들과
우리는 또한 비가톨릭 형제들과 손을 잡고 국가 건설의 노력에 더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여기 우리 안에 위험한「게또」의 정신을 만들 염려가있다. 우리의 노력에 선의의 모든 사람과 하나로 뭉쳐야겠다.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모든 인간 갈망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의 책임이요 교회의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도피하게 되는 일은 교회가 이 일을 보장해 주지 못할 때이다. 교회가 절박한 이 사회 정의에 직접 행동으로 참여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을 잃어버리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교회는 비젼이 없고 현실에 눈을 감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성실을 행동으로 드러내기 위해 제도적인 교회를 이미 떠난 자들에 대해 교회는 연대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하여 공동 투쟁에서 교회가 나누고자 하는 책임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에 불충실한 자처럼 생각지 말고 오히려 교회가 공언한 것을 생활화하지 못한 데 대한 약점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의 연대책임이 진실하고 또 이 연대책임이 요구하는 값을 지불하기에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교회를 장래를 위한 희망을 가지는 세계에 그리스도의 현존의 표지로 생각할 것이다.
■교회는 희망의 상징
공의회는 교회가 애덕을 생각하는 특수 장소라는 것을 알고 그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자들을 거기 널리 참여시키려고 호소한다.
즉 교회는 인간에 대한 봉사를 위하여 일한다. 교회는 이 인간의 운명과 만나는 장소이다. 즉 교회는 공동선에 연결된 시민이 품위를 가지도록 일한다. 그리하여 갖가지 자신을 초월하고 남에게 자신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일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하느님 자신의 인격과 통하기 위하여 우리 각자를 봉헌의 길을 걷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인간 운명의 뜻을 알고 자유로운 인간의 생활을 개방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개혁 위한 약속
정치 경제 사회 속에 교회는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 사회 정의 인권 존중 불평등 적용 안 되는 모든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약속을 한다. 그러나 약속은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직업적 개혁자의「마스크」를 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먼저 참으로 실천으로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증거하는 것이다. 남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신의 봉헌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회 현실 안에서 그 사회가 주는 순간에 가장 헌신적이요 봉사적인 나날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사는 것이 다만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것만이 아니요 사회생활은 대화이기도 하다. 즉 우리의 사회관계에서 숨어 있는 잠재적인 폭력을 초월하는 대화이다. 화목과 양보와 평화의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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