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날의 행사는 간단히 끝났다. 서울처럼 큰 고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방학 동안에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도 꽤 많았다.
만나고 보니 모두가 반가왔다. 형일이네 반 아이들도 다른 반 아이들처럼 대청소를 끝내고 몇 아이씩 떼를 지어 교문을 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개학날이지만 6학년인 형일이네는 이제 공부다운 수업은 있을 것 같지 않다. 곧 중학교 추첨이 있을 것이며 그 뒤를 이어 졸업식이 있게되니 말이다.
몇 해 전만 같아도 중학교 입학시험 때문에 아이들은 정신이 없을 터이지만 오늘날은 추첨을 해서 어느 중학교에 배당되느냐 하는 절차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은 태평스럽기만 하다. 혁이가 서울에 있는 자기의 삼촌집에 가서 서울의 중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소문은 아침결에 이미 모르는 아이가 없으만큼 널리 퍼졌다.
그것은 개학날의 가장 큰 화제로 등장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혁이를 시기하는 아이, 부끄러워하는 아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등 저마다 달랐다.
그런데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아이는 영호였다. 영호네는 어머니와 단 두 식구이다. 신문 배달을 하여 어머니를 돕고 있으며 어머니는 과일 행상을 하고 있다.
영호는 혁이가 서울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하고 대단치 않게 말했으나 마음 속은 복잡했다. 다른 아이들은 응당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영호는 그렇지 않다.
아직 어머니와 중학교 진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의논을 한 일도 없다. 서울은 고사하고 자기 집 형편으로서는 도저히 지기 고장의 중학교에도 진학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호는 혁이가 부러웠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자기의 처지를 불행하게 생각했다.
영호는 혁이ㆍ형일ㆍ경수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다. 경수의 오락장 사건이 있은 후 경수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가정교사도 내보냈다.
경수네 집은 다시 밝아졌다. 경수는 집에 마음을 붙이고 있었다. 그전처럼 바깥에서만 노는 일도 자연히 없게 되었다.
형일이랑 기찻길 건널목을 건넜을 때다. 갑자기 혁이가『악!』하고 소리쳤다.
함께 가던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준덕이와 삼룡이가 비웃는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준덕이가 당수하는 식으로 혁의 어깨를 내려친 것이다.
『왜!』
혁이가 소리치며 대들었다.
『왜!』
준덕이는「텔레비전」에서 본 영화의 깡패 식으로 여유만만한 태도로 혁이를 노려본다.
준덕이는 경수와 오락장을 함께 드나들던 아이다. 공부는 못해도 주먹만은 당해내는 아이가 없다.
준덕이는 혁이가 서울에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된다는 것이 왜 그런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아니꼬았다.
그리고 그 전에 한 패였던 경수가 혁이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 불쾌했다. 오락장 사건이 있은 후 경수는 준덕이와는 만나지도 않는 사이로 되어 있었다.
준덕이는 경수에게 배반 당한 것 같은 감정을 맛보았던 것이다.
『준덕아 왜 그러니?』
형일이가 웃으며 말했다.
『넌 또 뭐니?』
준덕이는 무슨 간섭이냐 하는 식으로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말했다.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어느 사이에 쭉 둘러섰다. 준덕이는 이렇게 된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목격하고 있는 앞에서 그대로 흐지부지 끝나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다.
『준덕아 그러지 마아』
경수가 사정하듯이 말했다.
『뭐!
준덕이는 성난 소리를 질렀다. 준덕이는 경수가 한마디 곁드는 것이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모양이구나, 자, 따라와!』하고 준덕이는 철도 옆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아이들은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따라가지 않으면 비겁해질 것 같다.
철도 옆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가보자!』
형일이가 앞장을 섰다.
『그래 가보자!』
경수가 신나게 소리쳤다.
『그럼 나도 가보자!』
용호도 소리쳤다.
시무룩해 있던 혁이지만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꼬마들이 그 뒤를 따라간다. 형일이랑은 준덕이가 싸움은 잘 하지만 그래도 이쪽은 넷이나 되니, 그다지 겁날 것은 없는 자신도 있었다.
먼저 간 준덕이와 삼룡이가 공지에 닿자 아이들이 가는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형일이가 먼저 그 앞에 섰다. 준덕이가 한 걸음 앞에 나서며
『네가 뭔데 언제나 까부는 거야!』
준덕이가 주먹을 꽉 틀어쥐며 말했다 당장에 한 대 갈길 기세다.
『내가 언제 까불었어?』
형일이도 만만치 않다.
『너 아까도 뭐라고 했어 네가 제일 먼저 대들지 않았어』
『그건 네가 먼저 혁이에게 싸움을 걸었기 때문에 이유를 물은 것뿐이잖아』
『뭐라고…』
말은 느릿했으나, 준덕의 행동은 번개 같이 빨랐다. 형일은 꼼짝 못하고 멱살을 잡히고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어느 꼬마가,
『저기 교장선생님!』
하고 앞으로 뛰어갔다. 아닌 게 아니라 30m 되는 곳에 교장선생님이 오고 있지 않는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