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이 오는 것을 발견한 아이들은 겁이 났다. 싸우려고 했던 아이들은 물론 구경을 하려고 따라갔던 꼬마들까지도 저마다 앞으로 막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싸움이 크게 벌어지기 전에 교장선생님을 발견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가지 않은 곳에 또 기차 건널목이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준덕이와 삼룡이는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뛰어들었고 형일이네 패는 건널목을 건너서 저희 동네로 갈 수 있는 샛길로 뛰어갔다.
한바탕 크게 벌어질 것 같던 싸움은 시작에서 끝나고 말았다. 한참 뛰어가다가『여, 교장선생님이 안 보인다』
뒤를 돌아본 혁이가 숨찬 소리로 앞서 뛰어가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앞서 뛰어가던 아이들도 멈춰 서서 뒤쪽을 바라본다. 아닌 게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적어도 2백 미터는 뛰었다. 모두가 빨개진 얼굴로 헐떡인다. 교장선생님은 준덕이랑 뛰어간 골목에 들어간 것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했다.
『에라 여기서 놀다 가자』
하고, 혁이가 좀 언덕진 곳에 뛰어올라갔다. 철길 건너에 있는 경수네 집이 보이는 곳이다.
『나도!』
형일이가 웃어대며 뛰어올랐다. 그러자
『나도』
경수도 크게 소리치며 뛰어올랐다. 영호도 뛰어올랐다. 그때 서울로 가는 급행열차가 부르릉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누가 먼저 일어섰는지 모른다. 모두 한 줄로 서서『와』소리치며 손을 흔든다.
열차에서도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보인다.
길게 연결된 열차가 순식간에 아이들 앞을 지나 멀리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은 항상 무엇인가 해야 한다. 금방 싸운 것쯤은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혁이도 얼마 후엔 저기 차 타고 서울 가는 거지』
경수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난 서울중학교 보내 준다면 걸어서라도 가겠어』
영호의 말이다. 모두가 중학교에 간다고 푸른 꿈에 부풀어 있으나 영호만은 그러하지 못하다.
영호는 아이들을 따라 덩달아 여기까지 왔으나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어제 신문을 배달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밖에 나섰을 때 지국장 아저씨가 뒤따라 나오면서『영호야 내일은 좀 일찍 오너라!』하고 말했다. 영호는 무슨 일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네』
하고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영호는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서는
『나, 오늘 빨리 가야 한다.』하고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루의 해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이들이다.
놀고 또 놀아도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인 것이다. 영호는 아이들과 함께 더 있고 싶었다.
영호는 신문 배달을 시작한 지난 해부터 아이들과 어울려 뛰놀고 싶어도 마음대로는 하지 못했다.
오늘만 해도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유쾌하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영호다. 영호는 약 15분 후에 신문지국에 닿았다. 지국장 아저씨가 일찍 나와 달라고 한 것은 별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국장 아저씨와 기자 아저씨가 함께 어디엔가 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사무실을 지켜 달라는 것이었다.
영호는 다른 아이들처럼 닫혀 있는 대문 앞에서
『문 열어 줘!』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된다.
영호네 집에는 대문이 없기 때문이다. 영호네만이 아니라 산마루의 집들은 거의가 그러하다.
『엄마!』
하고, 문을 열자 어머니가 일어서면서
『이제 오니 수고했다.』
웃는 얼국로 맞아 주었다. 어머니는 언제 집에 돌아왔는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영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세수부터 해라』
하며 부엌으로 나갔다. 영호도 따라 나갔다. 어머니는 더운 물을 세수대야에 부어 주었다. 어머니는 밥상을 마주하고 여느 때처럼 오늘 지낸 일들을 이야기한다. 영호도 다른 때에는 밥상을 마주하면 하루 동안 생긴 일들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집에 올 때까지는 식사 때에 중학교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몇 번이나 자기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의 지친 얼굴을 보고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어머니는 말 없이 밥을 먹는 영호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영호야 너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하고 물었다.
『아니』
영호는 억지로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영호는 용기가 있는 아이다. 신문 배달을 시작했을 때에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박차고 용기 있게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 지친 어머니를 더욱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호이기는 하나
-잠 잘 때에는 꼭 이야기해야지! 하고 다시 생각한다.
불을 끄고 잠 잘 때에는 어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아 말을 꺼내기가 쉬울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