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운 지는 오래다. 그러나 영호 어머니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비가 고요히 내리고 있다. 첫비다.
초저녁에 흐린 하늘을 보고 또 눈이 내릴까 보다고 생각했었는데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 나도 중학교 갔으면…』
영호가 벽쪽에 돌아누우며 말했을 때 어머니는 가슴이 따끔했다. 올 것이 끝내 오고야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엄마도 생각하고 있다. 어서 자거라!』
어머니는 부드럽게 말했다.
영호의 졸업기가 가까와지고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중학교의 진학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영호 어머니는 그것이 남들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영호에게 어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영호의 중학교 진학에 대해서 혼자 생각한 지가 오래다.
그러면서도 영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을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잔잔히 들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중학교 등록금 마련을 궁리하고 있었다.
영호네는 가난은 해도 두 모자가 끼니를 건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등록금 같이 목돈을 마련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공부도 제대로 하고 또 어머니를 크게 돕지는 못해도 어린 나이에 자기 스스로가 신문 배달까지 하고있는 너무나도 착한 아이를 국민학교에서 학업을 끝맺는다는 일은 너무나 잔인하기도 하고 어머니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는 돌아간 영호의 아버지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기만 했다.
영호네는 알뜰한 친척도 별로 없었다. 몇 집 친척이 있기는 해도 영호네를 도와줄 만한 친척은 없었다.
영호 어머니는 막연하기만 하다. 등록금을 해결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없다. 따지고 보면 얼마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금액이지만 영호네에는 대금이 아닐 수 없다.
팔아서 목돈을 만들 수 있는 물건도 명호네는 없다. 이자로 돈을 꿀 만한 상대도 없다.
이리 궁리하고 저리 궁리를 해도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형일의 아버지에게 의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큰 일이 생길 때마다 걱정을 끼치는 것이 미안했다.
『엄마도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의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영호는 숨소리를 고르게 잠들고 있었다. 영호 어머니는 역시 잠들지 못한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형일의 아버지에게 의논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형일의 아버지이면 힘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영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나 그 후에도 영호네를 도와준 것은 형일의 아버지였다. 그때 영호네는 아버지의 치료비며 또 생활을 위해선 부채를 갚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이라도 팔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영호와 어머니는 당장에 갈 곳이 없었다. 영호의 아버지와 형일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였다. 영호의 아버지의 어릴 때의 친구는 형일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호네가 어려울 때 누구보다 발벗고 앞장을 서주는 사람은 형일의 아버지였다.
집을 팔고 난 영호네는 형일이네 집에서 방세 없이 살았다. 지금 형일이와 형철이가 자기들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간방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영호네가 살고 있는 산마루의 조그마한 방 두 개짜리 집이나마 마련하게 된 것도 형일이네 아버지의 힘이 컸다.
판잣집보다는 좀 나은 집이다. 집주인이 집을 파고 어딘가 이사를 가기 위해 싼 값으로 집을 판다는 소문을 들은 형일이 아버지는 영화의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했던 것이다.
워낙 집값이 싸기 때문에 큰 돈이 필요치 않았다.
영호의 어머니는 그처럼 보살펴 주는 영호의 아버지의 친구를 특히 형일의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
영호네 모자는 형일이네 집에서 꼭 일 년을 살았다. 산마루 집에 이사가는 날에는 형일이네는 연탄까지도 한 달 땔 것을 주기까지 했다.
집은 팔 정도였으나 그래도 이삿짐은 많았다. 형일의 어머니는 싫은 낯을 하지 않고 반 나절 이삿짐을 날라 주었다. 물론 형일이와 형철이도 저희들이 운반할수 있는 물건을 언덕을 오르내리며 날랐다. 이렇게 하여 영호네는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내집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형일이네 집을 떠날 때와 새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영호 어머니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단지 슬퍼서만 아니었다. 옛정을 잊지 않고 모자를 돌보아 주는 형일이네와 영호 아버지의 친구들이 고마와서였다.
그 후에도 영호 어머니는 과일 행상을 계속했고 영호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내일이라도 형일이 아버지에게 의논하러 가야지.
하고 결심하자 영호 어머니는 어렵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끼었다.
영호 어머니는 무턱대고 남에게 매달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외의 방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선 입학할 때의 등록금만 마련되면 그 후의 등록금이나 다른 학비는 시일을 두고 조금씩 저축이라도 하면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게 생각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정거장에서 구내를 돌아다니는 증기 기관차의 소리와 짧은 기적소리가 멀리 들려온다.
가정이 훨씬 넘었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영호 어머니는
-당장 내일 저녁이라도 형일이네 집에 들러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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