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는 어제 밤
『엄마 나도 중학교 갔으면…』
매우 소극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중학교 진학에 대한 자기의 뜻을 밝혔을 때
『그래 엄마도 생각하고 있다.』
하고 말한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
『엄마 다녀올게』
밝은 소리를 남기고 집을 나선 영호는 언덕을 막 내리뛴다. 돌 층층대를 두 개 세 개씩 뛴다.
아무나 만나고 싶다. 자랑하고 싶다. 부모가 있는 집이나 돈이 있는 집 아이들에게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영호에게는 중학교로 간다는 일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어제 밤 비에 씻긴 지붕과 나무들이 아침의 밝은 햇빛에 말끔하게만 바라보이며 하룻밤 사이에 봄이 성큼 뛰어온 것 같다.
영호는 어머니가 중학교의 등록금을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려고 할까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같이 말했으니까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꼭 실현될 것이라고만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담임선생님이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들을 조사할 때 영호는 누구보다도 먼저 손을 번쩍 높이 들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간 영호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책가방을 손에 든 채로 운동장 어디에 있을 형일을 찾는다.
넒은 운동장 가득히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가 귓가에서 벌떼가 잉잉대는 것 같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노는 데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영호는 운동장 동쪽 구석으로 뛰어간다. 아닌 게 아니라 그곳에는 형일이가 아이들을 앞에 하고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준덕이랑 싸운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영호는 아이들 속에 끼었다.
형일이는 영호를 보자
『영호야 그랬지?』
하고 웃으며 말했다.
『영호야 뭘 말야.』」
영호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막 싸우려 할 때 교장선생님이 나타나신 것 말야.』
『응, 정말 그랬어. 그래 막 도망치고 말았어.』
영호도 신나서 말했다.
별로 우스운 일도 아닌데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때 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운동장 가득히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와! 하고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영호는 형일이에게 자기의 어머니가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영호는 시간 중에도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중학교에 가면 공부도 물론 열심히 하겠으나 일도 더 잘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석간신문만을 배달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조간신문 배달까지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침에 3시간 정도만 일찍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면 보수도 지금의 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앞으로는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
영호는 자꾸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한편 어머니는 영호에게 자기는 중학 진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고 또 형일의 아버지에게 의논을 하려고 결심하기는 했으나 그러한 일들이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나온 여러 가지 일로 미루어 보아 형일의 아버지는 영호의 중학교 진학에 대한 의논을 싫어하지 않고 받아 주시기는 하겠지만 너무나 염치 없는 청 같아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건 우선 나만은 잘 살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잘못 물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세상, 당장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는 체하는 그런 판국에 자기 아들의 중학교 등록금 때문에 남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일은 어머니로서 여간 고통이 되는 일이 아니다.
형일의 아버지가 영호의 어머니의 청을 과연 어떻게 받아 줄지는 몰라도 영호의 어머니로서는 지금과 같은 형편으로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과일 바구니를 이고 이집저집 단골집을을 돌아다니는 영호의 어머니는 여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이 오늘은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남을 도와 주기는 커녕 좋아서가 아니지만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부끄럽기만 했다.
옛날처럼 특별히 잘 사는 집 자식들만이 중학교로 진학할 때 같으면「모두들 못 보내는데」 하고 어머니는 쉽게 단념도 하고 자기의 입장을 합리화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중학교가 곳곳에 서고 거의가 중학교에 자식들을 보낼 수 있는 오늘날 유학이라면 또 몰라도 자기 고장에 있는 중학교에도 자식을 보내지 못한다는 일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로 외면하는 것이 된다.
영호의 어머니는 다른 날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준비를 다 하고 영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영호는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돌아왔다. 식사가 끝난 후 영호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 어디 가?』
하고 영호가 의아스럽게 물었다.
저녁이면 어디를 잘 나가지 않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응 공부하고 있거라. 곧 갔다올게』
『엄마 어디 가는데?』
영호는 어머니가 어디로 가는지 꼭 알고 싶다.
『형일이네 잠간 갔다올게.』
『엄마 왜?』
『아무 일도 아니야. 너무 오랫동안 가보지 않아서…』
하고 어머니는 바깥에 나섰다.
형일의 아버지가 어떻게 자기의 청을 받아 줄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 용건을 밝혔다가 만약의 경우 영호를 실망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는 영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ㅡ이제 회사에서 돌아오셨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영호 어머니는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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