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감소현상은 전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한국 교회에서도 일부에서는 벌써 성소 기근을 우려하고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아직도 우려되는 현상을 실감 있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또다시 옛 선조들처럼 가성직제도의 필요성까지도 외칠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엇는 후회뿐이리라. 금년도 성소주일을 맞아 본사는 직접 성소와 관계 있고 또 평소 관심을 가지신 몇 분을 모시고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
김영근 신부(사회) 성베네딕또회 서울분원장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
안선호 신부-프란치스꼬수도회 부관장
권오희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장 비서
오수안 씨-신학교 후원회 총무
기록=이건일 기자
곳=CCK 회의실
때=1972, 4, 5
<김>=아시다시피 16일은 성소주일입니다. 교회는 매년 성소주일을 통해 추수할 일꾼을 개발하는 데 온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다행히 금년은 대·소신학교 지망자가 전년에 비해 늘어난 현상 속에 성소주일을 맞습니다.
성소주일을 계기로 성소 개발과 지도 양성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금년도 성소 증가의 원인을 분석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금년도 성소 추세
<안>=저희 수도회는 금년 대신학생이 3명 소신학생이 5명 늘었습니다. 성소 개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이 있으면 알아야 가질 수 있고 먹을 수 있듯이 일반 청소년의 접촉이라고 봅니다. 성소의 자원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들이 성소의 진면목을 모른다면 소용 없지 않을까요? 그들과 접촉을 통해 신부나 수녀가 되면 어떻다는 것을 잘 알려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많은 돈을 선전을 위해 쓴다고 합니다.
우리 성소가「비지니스」는 아니지만 성소를 막연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려 주어 결정을 내리게끔 이끌어 가야 합니다.
금년도 저희 수도회 소속 신학생들을 보면 저희 수도회 신부 수사가 있는 곳에서 거의 온 걸 봐도 접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과 잦은 접촉
②<김>저희 수도원을 봐도 대개가 분도회 신부 수사가 있는 곳에서 많이 지망합니다.
그런데 금년도 신부 지망을 자세히 보면 크게 늘지는 않지만 줄어든다는 통념에 비해 줄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신앙과 성소는 비례관계에 있지 않나 봅니다. 일반 신자들이 신앙도가 높아지면 성소 지망율도 따라서 높아지는 것이고 반대로 저조하면 역시 성소도 줄어든다는 겁니다.
요즘은 작년부터 경제적 불황이 계속되는데 여기서 오는 세속에 대한 실망, 심리적 불안감, 긴장에서 상대적으로 성소에 내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질이 높아지는 경향
<권>저희 수녀원에선 매년 2월 1일에 지원자를 받고 있는데 금년에 21명이 지원했습니다. 작년엔 20명이었구요.
60년부터 70년까지 10년 간 지원자 통계를 보면 늘고 주는 것은 뚜렷치 않고 거의 같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타난 현상은 지원자의 질이 많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세속에서 살기 어렵다거나 완전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수녀원을 도피처처럼 생각하고 지원하는 예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수도생활의 가치를 알고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인류의 구원에 이바지한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지망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 수녀원으로선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규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스스로 교회가 요구하는 일에 능동적인 태도로 임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김>그러면 다음 문제로 성소 개발에 있어서 신부·평신도·특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역할을 좀 얘기해 주십시오.
■성소와 부모 역할
<오>일반적으로 성소를 두 가지 형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소를 원하지 않았는데도 우연한 기회로 성소를 택하는 경우가 있고 부모가 권하고 기구를 바쳐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안 들어가려고 고집을 부리다가도 뜻하지 않은 동기로 신학교나 수도회를 택하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대개 열심한 가정에서 성소 지망자가 많은 걸 보면 가정은 우연한 성소를 바라기보다 작은 교회, 작은 신학교라는 정신 아래서 자녀 교육을 하는 것이 성소 개발의 첩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부모의 열심한 표양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사제들과 특히 본당 신부들과 청소년과의 접촉을 어떻게 보십니까?
■본당신부의 영향력
<안>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성소를 택하기 전까지 인제 오 선생 말씀 같이 가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제생활을 하다 보면 60·70 난 할아버지들도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 할머니가 들려주던 얘기를 회상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어렸을 때 가정에서 받은 신앙 지도가 중요합니다.
평소 어린이들에게 성소를 잘 인식시키고 나아가 신부·수도자들이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절한 태도로 성소생활의 기쁨과 함께 어려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무조건 행복한 줄 알다가 막상 들어가 보니 거기도 인간적 갈등이 있는 걸 발견하곤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신학교나 수녀원생활도 그럴 수가 있고 또 일반인보다 성소를 택한 사람은 남보다 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인 만큼 결코 편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야 실망 끝에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사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성소를 택하기 전 평소에 성소를 잘 이해시키고 좋은 표양을 보여 주는 겁니다.
<권>수도원 입장에서 가정의 좋은 표양도 중요하겠지만 수녀의 경우 본당 신부님들의 역할이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여성적인 심리라고 할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녀원을 지망할 때 대개 본당 신부님과 상의를 합니다.
본당 신부님이 적성에 맡는 수녀원을 골라 너는 여기에 가는 것이 좋겠다 할 때 본인들도 거의 이 의견에 따르고 있어요.
또 수녀 될 생각을 안 하던 사람들도 신부의 권유에 따라 지원하는 예도 많습니다.
■신부들 존경 못 받아
<김>우리 일반 사제들의 얘기입니다만 사제들이 요즈음 청소년들 눈에 존경 받는 대상으로 보이느냐가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의 어렸을 적 일입니다만 이 다음에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본당 신부가 되겠다고 합니다. 훌륭한 사람으로 우러러보던 자기 아버지도 본당 신부 앞에선 꼼짝도 못하는 걸 본 어린이들 눈에 신부는 굉장한 존재였고 따라서 위대한 인물 선망의 적으로 신부를 꿈꾸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신부가 그렇지 못해요. 솔직한 얘기로 공의회 이후 주교와 평신도 위치는 올라갔지만 떨어진 건 신부밖에 없다고 하는데 한국만 하더라도 시골에 가면 유지로 한 몫 끼기라도 하지만 대도시에선 별 존재가 아니거든요. 본당만 하더라도 신부보다 높은 교육을 받은 신자가 많고 경제력만 해도 신자들이 월등하다 보니 자연히 어린이들이 신부를 훌륭한 존재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신부들이 좀 인자하고 덕성스러운 태도를 지닌다면 그런 대로 어린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텐데 아직도 신부들은 권위주의로 나가고 있고 해서 좋은 인상을 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의 기도·표양이 전제되어야겠지만 인격적으로도『신부는 훌륭한 인물이다. 나도 신부가 되어 보았으면』하는 인상을 제 자신부터도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권>수녀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김>아니예요. 어디선가 여론조사를 했더니 가톨릭에서 제일 인상적인 사람이「수녀님」으로 나왔다더군요.
<권>「가톨릭 종교사회 조사」에 그렇게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그런데 생활을 통해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산 표양
<김>선전도 필요하겠지만 산 표양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부모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데 애들 앞에서 흔히 본당 신부의 흉을 봅니다. 이것이 어린이들의 성소에 큰 지장이 됩니다. 하시지 말라고 부탁드릴 수는 없지만 성소 증가에 도움을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저는 요즘 몇몇 청년들로부터 고무적인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전과 달리 많은 신부님들이 청소년 지도에 열의를 쏟고 있는데 신부님을「클럽」에 초대해서 지도를 받은 대학생들이 말하길 신부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속과 무관심한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하는 줄만 알았는데 막상 대해 보니 사회와 청소년들을 이해할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대학생들은 성소를 떠나 이 사제를 중심으로 종교를 더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김>결국 사제가 일반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때문이겠습니다.
<오>이런 걸 봐서 신부님들이 바쁘시겠지만 청소년들과 접촉할 기회를 마련해서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 사제의 훌륭한 면을 은연중에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성소 전망은 밝아
<김>성소가 줄어든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가정과 성직자가 훌륭한 신앙, 좋은 표양, 그리고 따뜻한 접촉을 통해 청소년들을 이끌어 간다면 성소 개발의 전망은 어둡지 않다는 결론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성소 개발과 양성을 위한 지도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
요즈음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가 귀하다 보니 지나치게 우대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좀 생각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가령 대학 출신이 들어왔다 해서 고등학교 출신과 다르게 대우한다거나 수만을 생각하고 사제나 수도생활의 좋은 면만 얘기해 준다거나 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도 가정에서 강조하는 일들은 시정되어야 할 점들이라고 보는데요.
■성소는 더 큰 십자가
<안>앞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성소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는 한편 신학교나 수도원도 인간사회인 만큼 사회와 같이 질투도 있고 어떤 면에선 공동생활이므로 사회보다 인간적 갈등이 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수녀원은 천사 같은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더니 사회보다 더하다면서 뛰쳐나오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이것은 사전에 교육을 잘못시킨 결과입니다. 예로 어느 수녀원에선 28명 지원자 중 27명이 나갔다고 하는데 이들이 들어가기 전 충분한 지식을 갖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소에 대한 신념을 굳혔더라도 조그만 유혹이나 고통에 그렇게 쉽사리 굴복하진 않았을 겁니다.
<김>그러니 본당에서부터 지도 중에 성소 여부를 잘 판단해서 성소가 없다고 보여지면 보내지 말아야 하겠고 신부님들도 이런 점에 유의해서 양심 있게 지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진 신학교나 수도회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문제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러면 들어간 후에는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성방법에 있어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긍적적인 지도를
<권>공의회 이후 각 수도회의 양성 방법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수도원에 들어오면 정해진 시간 외는 덮어놓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만 했지 왜 침묵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한 예이겠지만 이 밖에도 수도생활 규범 전반에 걸쳐 충분한 설명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공의회 이후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데 중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정결 순명 침묵을 가르치는 데도 전에는 단순히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혼자 살아야 한다고 부정적인 면만 강조했는데 지금은『혼자 사는 원인은 더 큰 사랑을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서다』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인 면은 될수록 피하고 있습니다.「무엇을 해야 한다」「하지 말아라」에서「이러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좋다」는 권고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알아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도생활이 되도록 주력하고 있습니다.
■자율적 교육 중시
<김>규칙과 감시에 매여 할 수 없이 하는 것은 신학교에서도 문제였지요. 신부가 되어 규칙에서 벗어나면 자율적인 훈련이 안 되어 심하면 방종에 흐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율교육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요즈음은 사회가 분업화되고 전문화해 가는 데 따라 공의회 이후는 앉아서 교우를 맞지 말고 신부 방을 개방하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신부도 전문화해 가는 사회 추세에 맞추어 성사 집전만 하는 단일성에서 벗어나 여러 현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소질을 개발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신부를 보면 꼭 같은 옷에 같은 스타일의 미사 집전, 같은 내용의 강론으로 어떤 특성을 발견하기가 힘든 형편 아닙니까.
앞으론 본당 신부도 필요하겠지만 특수사목에 종사하는 신부도 많이 배출되어야 효과 있는 전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소 감소는 세계적
<안>「바티깐」공의회 이후 성소 감퇴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과거 수도생활의 여러 가지 규제는 개인 성화라기보다 생활 방법에 불과했습니다.
복음을 읽는다, 편태를 한다, 침묵을 지킨다, 하는 모든 것이 개인 성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저는 좀 구식인지 몰라도 환경이 인간의 정신을 거의 95%까지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 자율과 자유도 좋지만 극기와 기도의 정신을 살려 가야겠고 사제 교육이나 수도생활에서 과거의 방식을 무턱대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정신만은 살려 가야 한다고 봅니다.
■소질 따라 인재 양성
그리고 소질을 개발하는 문제에 있어 전에는 본당신부나 보좌신부로 족했지만 지금은 김 신부님 말씀처럼 특수사목을 염두에 두고 지도해야 합니다.
외국에 가보면 본당에 있는 신부 수가 전체의 반이 될까말까 해요. 나머지 신부는 각 분야에 침투해서 특수사목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학교 수도회에서 특수사목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본당신부나 보좌신부만 충족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뒤떨어진 생각입니다.
■특수사목 개발해야
<김>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학생 지도신부 문제만 해도 서울에 몇몇밖에 없는 실정이 아닙니까. 본당신부들은 본당일에 바쁘다 보니 학생들을 파고들어갈 수 없고 그러니 앞으로 이 같은 특수사목 신부가 절대 필요하다는 자각을 갖고 본당 사목만을 위한 사제 양성에서 벗어나 신학도 때부터 특수사목에 필요한 소질을 키워 주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많이들 강조는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권>그래서 저는 일단 신학교를 나온 후에라도 인문계 대학 같은 곳에서 전공을 키워가는 게 어떨까 합니다.
<김>물론 좋겠지요 그런데 그게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신학교와 종합대학
<오>신학교를 종합대학으로 확대해서 교육 내용을 다원화시키고 많은 학생들이 신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접촉을 통해 성소 지망자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고 또 신학생들도 여러 방면에 골고루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김>아주 필요한 일이지요. 평신도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제를 키워가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오>종합대학 교육을 통해 오늘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을 갖춘 사제를 길러내는 문제를 연구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김>시골에선 의사 한 사람이 내과 소아과 외과 통털어 보지만 도시의 종합병원은 내과 한 과목만 해도 위·간·심장 등 세부적으로 나누어 거기에 전문가가 있듯이 우리 사제도 각기 소질에 맞는 전문 분야를 하나씩 가져야겠는데 기본 수 조달에만 급급하다 보니 이 방면에 소홀한 건 사실입니다.
■신부는 만물박사?
<오>시골본당엘 가보니 본당신부는 여러 가지를 알아야겠더군요. 어느 시골에 있는 한 신부님은 동네 의사 노릇까지 하고 있어요 동네의 누가 아파도 신부님한테 달려오고 심지어 산모가 생겨도 신부님한테 온답니다.
<안>신부 한 사람이 만물박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은 특수사목 분야의 전문가 신부를 많이 양성해야겠지요.
<오>그렇게 되면 사제가 많이 늘어야겠지요.
<김>그런데 저는 신부 수가 더 늘지 않아도 현재의 신부 수를 가지고도 제도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강론만 해도 일률적으로 할 게 아니라 어른 학생 어린이에 맞도록 따로 준비한다든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모아 미사를 봉헌하는 일 등을 통해 융통성 있게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겠지요.
■문제는 성덕 함양에
<김>그런데 무엇보다 문제는 어떻게 성성(聖性)을 갖춘 사제·수도자를 길러내느냐인 것 같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는 우선 거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근본이지요. 요즈음 성소를 택했던 사람들이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신부가 되고 서원을 했다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소가 굳어여야 합니다. 하느님과 기도를 통해 가까와지고 평소의 극기를 통해 유혹을 이겨나가는 태도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성소를 개발하고 양성하는 노력과 함께 성소를 택한 사람들이 하느님과 가까운 거룩한 신부 수도자가 되도록 온 교회가 관심과 지도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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