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이기수 몬시뇰에 이어 이번호부터는 부산교구 박동준 신부의 희고를 연재한다.
박동준 신부는 1911년1월21일 경북 영천읍 괴연동에서 출생, 1938년 사제로 서품됐다. 39합천본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 박 신부는 충무ㆍ온천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한 뒤 1966년 은퇴,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 사택에서 요양 중이다. <편집자주>
나는 동료사제 다섯 명과 함께 1938년 6월11일 서울교구 라리보 원주교의 집전으로 사제서품을 받고 존엄하신 하느님의 제단에 오르게 되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벌써 다섯 번이나 강산이 변한 사제생활 50년을 보내고 80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말았다. 내 청춘에 어제 같은데 유수와 같은 세월의 흐름이 실감난다. 마음은 조금도 변함없는데 벌써 이처럼 늙었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에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동안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신 하느님의 크나크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때는 왜정이 시작되어 우리민족이 타민족의 굴욕을 당하기 시작한 때로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또 교회적으로도 파란만장한 변화와 경험을 체험했다. 실로 감개무량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경북 영천읍 괴연동에서 태어나 벌써 오래전에 작고하신 류홍모 안드레아신 부님의 추천으로 14세에 대구 성유스띠노 신학교에 입학, 14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28세에 신부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 박베드로(봉일), 어머니 송루피나(도움)씨의 슬하에서 8남매 중 막내로 1911년 1월21일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집은 추수하면 약 1백석 정도의 큰 부자도 아니고 크게 가난하지도 아니한 그때로서는 꽤 잘사는 축에 속했다.
부귀다남(富貴多男)을 자랑으로 삼았던 우리집은 머슴들을 합하여 식구가 20여명에 이르러 약 1백20호가 살던 마을에서 식구 많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손님이 찾아올 때면 24~25명이 넘은 적도 있어 그 당시의 대가족 제도를 알만도 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버지께서는 30대 초반에 천주교회에 입교, 영세하여 30년 동안 공소회장직을 맡으셨다.
아침ㆍ저녁기도는 물론삼종기도 한번 빠뜨리지 않으셨으며 주일 대축일은 물론 소축일까지 철저히 엄수하셨던 매우 신덕이 깊고 열심하신 분이셨다.
특히 임종대세를 주시는데 에는 매우 열심하셨다. 대세를 받고 미소를 짓는 사람들을 보시고 늘 자랑으로 여기셨다. 외교인들의 시체와 대세를 받고 죽은 교우들의 시체는 완연히 다르다고 매번 신기해하셨다.
아버님의 정성으로 우리 집에는 성수가 늘 준비되어있었다. 한번은 우리 집 옆에 있는 공소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버님께서 성수를 가져 가셔서 그 불난 집에 뿌리고 나니 곧 불이 꺼졌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아버님께서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는 아버님의 친구분 아들에게 여러 번 찾아가 대세를 권고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환자는 처음에는 대세받기를 완고하게 거절하여 윗방으로 찾아가면 아랫방으로 도망가고 아랫방에 가면 윗방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병이 대단히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는데 환자의 몸에서 굵은 이들이 꿈틀 커다란 기어 나오는 것을 보시고 일어나 직접 손으로 잡아 변기에 버리시는 것을 보고 있던 환자가 마침내 감복, 대세를 받고 선종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님의 깊은 신앙심에 놀랐다. 그 당시는 항생제가 없던 때라 폐결핵에 걸리기만 하면 죽기만을 기다릴 뿐 별 치료법이 없던 시대였고, 또 전염이 될까 두려워하여 환자의 방에는 부모형제까지도 들어가기를 기피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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