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하다는 소위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사람이란 남의 불행을 보고 좌시할 수 없는 동정심이 있다… 이와 같이 못견뎌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인심이라면 어린 아기가 겁 모르고 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마음은 본성적으로 타고난 측은지심이라고 부르며… 이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인덕(仁德)의 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고 하였다.
한편 맹자보다 약 백년 후에 순자(荀子)는 공맹(孔孟)의 설을 반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인간은 본성이 악하며 선한 것은 인위적인 수련의 결과라고 하였다.
본성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며 나무는 있는 그대로 두면 옆의 나무와 싸우며 사람은 생긴 대로는 이익만 추구하고 쟁탈을 일삼으며 무례하며 욕심대로만 살게 된다. 그러므로 나무도 가꾸어야 하고 사람도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좋아지는 것이다. 이 가꿈을 순자는 위(僞)라하고 적위론(積僞論)의 윤리를 주장하였다.
가톨릭의 윤리견지에서 보면 두 사람의 견해는 둘 다 옳은데도 있고 틀린데도 있다. 인간은 본래가 선하게 창조되어 선을 향하여 살도록 마련되었지만 실제로는 악에 기울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취급하게 되는 예수와 그 반대파들과의 논쟁은 맹순의 논쟁처럼 본디선한 성정을 따르는 수양이냐 아니면 본래악한 본성을 교정하는 공부냐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성이 선하냐 악하냐를 따지자면 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논쟁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냐 인선(仁善)을 이룩하는 것이 우선이냐는 문제이다. 유대아인들에게는 율법은 그 어느 것보다도 귀중하고 지상(至上)의 우월자이다.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 율법에 굳어버리다 보면 율법이 곧 하느님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율법은 인간생활의 구석구석을 조목조목 문자로 통제하기 때문에 아무리 상황에 따른 예외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무한한 탄력성을 지닌 인간의 심성이 자유로운 발상으로 선한 인생을 창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번 안식일에 안식일 노동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예수께서는 「또 다른 안식일에」즉 그다음 안식일에 율법정신에 대한 논쟁에 들어갔다. 그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병신 한 사람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성경외적 문서인 「나자렛인들의 복음서」라는 책에 따르면 이 사람은 오른손으로 밥벌이하는 장인(匠人)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오른 손은 그의 가족의 목줄이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이 사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 예수를 감시하려고 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민족적인 보안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예수를 잡으려면 율법을 어기는 현장을 적발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치유행위를 하지 않을까하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루가복음서는 전하고 있다. 그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도 되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병자를 앞에 놓고 치유의 합법성 문제를 따져야 하는가, 법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따라서 법 중의 법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다. 그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법은 선을 수호하고 악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반문하였다. 『율법대로 하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합법적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 합법적이냐ㆍ사람을 살리는 것이 합법적이냐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합법적이냐? 선을 행해야 할 때에 이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것 자체가 악이며 하지 말아야 할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그것 자체가 선이다』
여기 예수님 앞에는 불행에 찌든 병신 한사람이 앉아 있다. 생계에 귀중한 양 한마리가 구덩이에 빠질 때 안식일에라도 이를 건져낼 수 있는데 지금 여기에는 병신 된 손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치유할 수 있는 일을 안식일 법 때문에 그대로 모르는 체 해야겠는가. 사람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율법의 본 정신이겠는가.
율법이 진정 하느님의 법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정신이다. 알맹이는 빼고 법조문글자에만 집착하면 생기 없는 법기계 밖에 될 것이 없다. 예수께서는 반대자들의 굳어버린 아집을 안타깝게 생각하셨고 분노마저 일으켰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굳이 위법행위를 할 것까지는 없었다. 사랑의 법정신을 가르치시기는 했지만 율법을 위반하지 않고 말로 그 불행한 사람을 고쳐주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하는 말만 하신 것이다. 그러자 그의 손은 말끔히 나았다.
예수께서는 이 불행한 사람을 앞에 보시며 온갖 불행에 신음하는 온 인류를 내다보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치료제를 구상하고 계셨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반대파들은 예수와의 토론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으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 할 것도 없고 더 감시할 것도 없었다. 이 자는 없애버리는 것이 상수라고 순식간에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어떻게 없애버릴까 그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들은 헤로데 일당을 찾아가서 음모를 꾸미기로 하였다. 종교권은 유대아인들에게 있었지만 행정권과 정치권은 헤로데 일당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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