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적으로만 교회를 관찰하는 사람에게 교회의 조직을 도표로 그려보라 한다면 대개는 다음과 같이 그릴 것이다. 삼각형의 피라미드를 그려놓고 정상(頂上)에는 교황, 그 밑에는 주교, 그 밑에는 성직자, 또 그 아래는 수도자, 가장 넓든 바닥에는 수도자, 가장 넓은 바닥에는 일반신자를 두어 교회가 마치 5가지 계급으로 구성된 조직체인 것처럼 인식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도표는 전적으로 잘못 그려진 것이다.
1, 직분상의 구별
교계제도 안에서 주교와 신부와 부제는 엄연한 계급이지만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자라는 명칭은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각기 다른 직분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러니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자중에서 누가 더 높으냐하는 따위의 논의는 전혀 무의미한 논의이다. 성직자는 신품성사(주교품, 신부품, 부제품)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예언직(교도권)과 사제직(신품권)과 왕직(사목권)에 직임적(職任的)으로 참여하여 교회의 공직자가 된 사람이다.
수도자나 평신자는 신품성사를 받지 아니하였고 따라서 교회의 신분적 공직자는 아니지만,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다만 이세가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직임적으로 하지 않고 증험적(證驗的)으로 즉 생활로써 하는 것이다.
마치 온 국민이 국가에 봉사하지만, 공무원은 직임을 가지고 유권적으로 봉사하고 일반 국민은 자기 생활로써 봉사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때에 공무원이라고 무조건 국민보다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없듯이 성직자는 수도자나 평신자보다 항상 높은 계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직자의 직위는 쉽게 말해서 교회의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2, 수도자
성직자는 교회의 공직자로서 신품성사를 받은 사람의 통칭이고, 수도자나 평신자는 신앙생활 양식(樣式)의 차이에서 나오는 구별이다.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세 가지 서원(誓願)을 하고 세속적 생활양식을 떠나서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여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여 교회의 거룩함을 증거하는 표지가 되고, 완성되었을 때의 교회의 모습을 미리 증거하는 신자이다. 그래서 수도자를 신학적 용어로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이라고 부른다.
수도생활의 의미는 하느님 나라의 절대적 우월성을 서원생활을 통하여 증거 하는데 있다. 수도자들은『이 세상에 벌써 존재하는 천상의 은혜를 더 잘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획득된 새로운 영생을 더 절 증거하며 장래의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더 잘 예고한다』(교회헌장44).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교회의 예언직에 깊이 참여하여 복음선포에 헌신하였고, 교회의 왕직에도 깊이 참여하여 문화의 건설과 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세속을 떠난 수도자들이 그들의 3대 서원으로 물질과(청빈)가정과(정결)자아에서(순명)자유로운 몸이 되어 세상의 발전과 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었던 깃이다.
수도자 생활이 직접 계시된 것이 아니고 교회의 인준에 의한 것이지만, 수도생활의 이념은 지극히 성서적이고 성전(聖傳)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교회 생명과 성성(聖性)에 요지부동하게 속하는 것이다』(교회헌장44)
다른 한편 수도자 신분은 교계제도의 일부가 아니고 생활양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성직자나 평신자 양편에서 이와 같은 수도성소(修道聖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성직자인 수도자도 있고(분도회 신부, 예수회 신부처럼)성직자 아닌 수도자도 있다(수사, 수녀).
3, 평신자
어떤 사람은 평신자의 평(平)자가 격하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그냥「신도」「신자」라 하지만 성직자ㆍ수도자에서 일반신자를 구별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득이 평신자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 양해하시기를 바란다.
역대 공의회 문헌에서 명시적으로 평신자의 신원(身元)을 논하기는 교회헌장이 처음인 것 같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지 그전까지 평신자는 2급 신자로 취급된 것은 사실이다. 교회헌장은 평신자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다른 신분과 구별할 때에는 소극적 표현을 쓰고 있다.
평신자는 교회의 능동적 구성원이다. 그는 『세례성사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합체된 자로서 하느님의 백성에 들고 그에게 고유한 양식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자기 분수에 따라 이행하는 그리스도 신자이다』(교회헌장31). 그러므로 평신자도 성직자나 수도자와 함께『선택된 민족이고 임금이신 하느님의 제관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1배드2, 9)
평신자는 성직자가 아닌 신자이다. 이것은 소극적 정의이기는 하나, 성직자가 교회사명을 수행할 때에는 직위를 발동하지만, 평신자는 생활경험을 통하여 교회사명에 참여함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러나 평신자도 교회 공동체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교회헌장32:33:37).
평신자는 이 세상을 건설하는 신자이다. 그는 세속 안에서 현세사물을 관리하고 가정생활과 직업생활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이 점은 수도자에서 구별되는 특징이다. 수도자는 직접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되지만 평신자는 세속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한다.
단순한 재속성(在俗性)이 평신자의 특징이 아니고, 재속생활을 하면서 세상사물을 복음정신으로 판단하고 관리하고 향상시킴으로써 세상의 복음화를 도모하는 것이 평신자의 고유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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