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익살꾼이 신부의 공소 순방을 소재로 지어낸 얘기 한토막.
신부가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어느공소에 이르니 공소 앞에 늘어섰던 교우들 중 한 소경이 뛰어 나오며『아이고 신부님 어찌그리 늦게 오십니까. 죄인은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소령이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는 표현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 지어낸 짧은 얘기는 일년에 두차례 신부를 맞는 공소 신자들의 기다림에 찬 기쁨이 어떠했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박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876년 몰래 입국한 블랑 백신부가 만주에 있는 교구장 리멜 이주교에게 보낸 서한중에 기록한 공소풍경을 보면
『이번 공소길은 일기가 너무춥고 눈이 많이 와서 많은 여교우들이 오지 못했으니 그 중에도 혹시 다른 공소에서 온 부인들을 보면 발이 다 얼어 동상을 입었습니다 (중략) 79세된 노파 하나는다른사람 등에 업혀 혹한 중에 사흘동안 와서 영세를 받았으며 한 집안 온 식구가 모두 눈보라속을 꼬박 열흘동안 걸어와 성사를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공소란 말이 공소지 지금처럼 강당을 짓고 제대로 갖춘것이 아니었다. 관헌의 눈이 뜸할땐 교우동네 회장댁 안방에서 아니면 뒷산 토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안한 가슴을 쓸며 황망히 성사를 마쳐야 했었던 것.
그러나 따지고보면 인적드문 산속에 묻힌 교우촌에서 이루어진 신부와 신자의 불안하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던 이런 상면은 공소의 기원(起源) 이 되었고 공소는 온갖 역경속에서도 신앙을 키워 보존해온 요람역할을 해왔다.
1800년대 전국의 공소 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박해가 끝난지 20여년이 지난 1970년 교회가 처음 발표한 교세통계에 따르면 이해의 전국 공소 수는 무려 931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전국의 신부수가 56명이고 성당이 48개소였으니 신부1 인이 공소 17개소를 관할했음을 알수 있다.
그 후 공소 수는 계속늘어나 1920년에는 1081개소 1940년엔 1360개소로 늘어났고 이 때 신부수는 177명이었다.
그러고보면 성당 10리 밖에 사는 신자가 훨씬 많은 셈이 되고 이들을 사목하는 일은 큰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래서 본당 신부는 일년에 일정한 기일을 정해 공소 순방에 나서게 되었는데 때는 대개 부활과 성탄에 앞서 판공성사를 준비할 즈음이었다.
본당 신부는 공소 순방 때가 가까워오면 각 공소에 방문일자를 알리는 배정기(配定期)라는 걸 띄워 머리예령을 걸어 놓는다. 배정기를 받은 공소 회장은 이때부터 매주 공소모임에 신부 방문일자를 되풀이해 일러주고 신자들의 성사준비를 독촉하는 한편 새영세자 영세준비에 한층 신경을 써야한다.
또 신부가 묵어갈 방도 다시 도배를 하고 대접할 음식이며 환영절차를 참으로 지성껏 마련하느라 눈코뜰새가 없어진다.
이리하여 신부가 당도하는 날이면 공소는 온통 잔치분위기. 이른아침부터 어른 아이할것 없이 모두 새옷으로 갈아입고 동구밖까지 늘어서 신부 일행을「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가 하면 공소 회장이 인솔한 한패는 미리 신부가 출발할 공소까지 몇십리 길을 찾아가 일행을 인도해오는 것이었다.
공소를 도는 신부 일행의 모습도 재미있다.
우선 신부를 모시고 다니는 본당 복사에, 신부의 제의에서부터 이부자리 옷가지 일용품 심지어 요강까지 짊어진 짐꾼이 따르고 어떤 신부는 이 짐들을 말에 실리어 오기 때문에 마부까지꺼면 보통 5~6인이 줄줄어 신부뒤를 따라오게 마련.
그런가 하면 어떤 신부는 귀찮다고 자전거 뒤에 미사도구만 간단히 싣고 순방길에 오르기도 했다.
신부가 도착하면 함께 바치는 주모경에 이어 고해성사ㆍ영세ㆍ미사 순서로 대충 큰 일을 끝낸후 둘러앉아 밤이 깊도록 술잔을 나누며 얘기꽃을 피운다. 신부가 건네주는 술잔을 차마 받지못 해얼굴을 붉히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신부가 물린 음식상을 뒤치닥거리를 하는 부인네들은「축복받은 음식」이라고 저마다 들고 가기도.
신부를 편히 잘모시겠다는 소박하기만 한 정성이 때론 신부의 역정을 사기도 했으니 어느해 가을 강원도 산골공소에선 주무시는 신부님이 추우실까 밤새 교대로 불을 때는 바람에 연기와 열기에 참다못한 신부『그만 때라는데 누굴 곰으로 아느냐』고 버럭 화를 내 회장이 쥐구멍을 찾은일도 있었다.
본당 신부의 공소 순방은 대개 1개월 정도 걸리곤 했다. 1942년 평북「북진」이란 곳에서 있은일.
대동아전쟁 발발후 일제의 외국인 추방으로 매리놀회 신부들이 쫓겨간후 안주본당 주임으로 있으며 평북일대 7개 본당을 맡고있는 조인원 신부 (66ㆍ은퇴)에게 비밀히 전갈이 왔다. 북진이라는 곳에 중국인 신자 40여 세대가 살고있는데 이들이 신부를 모셔다 성사보기를 원한다는 것.
일경(日警)이 알면 타박을 붙일 일이지만 외국인이 성사를 청하는데 안갈수 없는 일이다. 몰래 찾아갔다
이들의 기쁨은 말할것도 없고 떠나올 때『내년 봄에 꼭 다시 와달라』는 신신당부에 이듬해 봄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이날 저녁 내 온밥상위에 때아닌, 더욱이 이런 산골에서 생각할수도 없는 생선 조기가 올라있지 않은가. 신기한 생각이 들어 조신부 이 귀한것을 어디서 구했는가고 물었다. 『지난해 신부님이 다녀가신 후 시장엘 갔더니 마침 황해도시에서 올라온 생선조기가 있길래 금년에도 신부님이 오시면 대접하려고 두마리를 사왔습니다』『그럼 지금까지 근 열달동안 보관해왔단 말이오』『예. 여름엔 얼음을 채우고 겨울엔 눈을 덮어 지금까지 보관해 왔는데 입에 맞으실지요』사제생활 40년을보내고 이제 7순을 바라보는 조신부는『죽기전엔 잊지 못할 일』이라고회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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