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아 엄마아』호들갑스럽게 창밖에서 딸아이가 나를 불렀다. 몇해 전의 일이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봄이라기에는 너무도 쌀쌀한 날씨였다. 안방 아랫목에 깔아놓은 담요밑에 발을 파묻고 책을 뒤적이고 있노라니까『딸기나무가 살아났어』『어서 나와봐 엄마』딸아이가 어서 뜰에 나와보라고 법석을 떠는 바람에 나가 봤더니 작년에 이웃집에서 옮겨다 심은 몇포기 딸기넝쿨이 겨울동안 완전히 얼어 죽은줄 알았는데 메마른 땅을 비집고 아주 연한 새싹을 뾰족이 내밀고 있었다.
만으로 일곱살인 딸아이가 딸기넝쿨을 통하여 처음으로 스스로 발견한 부활의 신비였다. 그때 나는 오랫동안 예사로 보아 넘기던일 즉(봄이 오면 죽은것 같던 마른 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난다)는 이 단순하면서도 신기한 사실을 어린 딸아이로 해서 다시 발견하고 다시 인식(認識)하게 되었던 것이다.
천지만물 어느것 하나 조물주(造物主)이 오묘한 섭리가 미치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 너무도 그 테두리가 넓기 때문에 어리석은 우리들은 미쳐 깨닫지 못하는 것이 예사이다.
그러나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는 우리 삶에 물질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때때로 그 신비에 놀라고 그 섭리에 머리 숙인다.
나는 아직 가본 일이 없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 지구상에는 춘하추동의 구별없이 겨울만 있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는데 상상만해도 얼마나 살벌할 것인지-사계절의 아름다운 특징과 신비로운 변화를 맛볼수 있는 이 나라에 살고있는 것에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어두워지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또 다시 동이 터서 밝은 낮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뿐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듯이 겨울이오면 벌서 그 겨울 깊은곳에 봄의 씨앗이 움터 곧 봄이 오리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의심없이 믿고있다. 또한 입춘이 지나고 우수ㆍ경칩을 지나면서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어김없이 새싹이 움튼다는 것, 완전히 물기가 걷혀 메말랐던 나무가지나 줄기에 거짓말같이 새잎이 돋아나고 꽃이 핀다는 것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고 곤충도 살아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믿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마다 되풀이 되는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물리현상이라고만 무심히 넘겨버리기에는 벅찬 부활의 신비가 아닐수 없다.
피조물(被造物)인 동식물(動植物)의 부활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이미 믿고있으면서 피조물 중에서 가장 완전하다는 우리들의 부활을 의심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고 있지 않은가 다가올 부활절을 앞두고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곧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봄에 우리의 육안으로 볼수 있는 만물이 소생하는 평범하고도 신비스런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영(靈)의 눈을 떠 우리들의 부활을 믿고 예수 부활의 참뜻이 어디있는가를 알아야 되리라.
사람은 죽음을 가장 슬퍼하고 두려워한다. 육신의 죽음이 영원한 종말이라면 우리의 삶은 너무 덧없고 허망하다. 그래서 죽음을 무서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을 꼭 믿는다면 나무둥걸같은 육신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 문제가 될것이다. 영혼의 피곤과 영혼의 병고와 영혼의 멸망이 두려운 것이다. 영혼이 멸망하지 않은 한 곧 그것이 때가 이르면 부활의 가능을 뜻할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을 위하여 먹고 입고 다듬는 근시안적(近視眼的)인 노력을 정작 육신의 주인인 영혼에게 더욱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여름을 성숙(成熟)의 계절 가을을 결실(結實)의 계절 겨울을 죽음 혹은 잠의 계절이라면 봄은 확실히 부활의 계절이다.
우리는 봄을 맞으면서 겨울에서 다시 살아나는기쁨을 음미하며 영원한 죽음에서 승리하는 부활의 진의를 확신(確信)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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