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지상과제
종교의 궁극의 목표는 정신적 황폐 속에 빠져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 사회 정의의 구현에 있으리라.『정의의 한 시간을 기도를 칠십 년 동안 올리는 것보다 가치가 크다』고 한 어느 성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의의 실현은 종교의 지상과제라 하겠다. 정의의 태반 없는 사랑은 위선이며 어떠한 종교행위도 세인을 위해 큰 공헌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부정은 건강한 인간을 병들게 하고 좌절과 허위 속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정의의 기초 없는 사회는 자연 정체 부패하고 무기력해진다. 연전에 총리는 우리 사회의 병리로서 삼불 즉 부정, 부패, 부조리를 지적한 일이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지 이와 같은 병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우리 사회가 더욱 심한 이유는 나변에 있을까. 오래 빈곤의 역사와 근대화를 향한 급속한 사회 변동, 자본주의 사회의 황금만능사상에 대한 인간 본능의 발동, 그리고 천박한 대중문화가 부채질한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간 형성과 대중문화
인간이 사고와 정서를 형성하는 데 교육과 환경은 절대적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대중문화에 짓눌려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고 인간 형성은 오로지 대중화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의 인상마저 준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뿌리는 무엇인가. 이는 운명적이고 찰나적이며 요행적인 토착사상과 한일합방 이후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사상, 그리고 해방 후 구미로부터 들어온 이기적이고 관능적인 껍데기문화가 혼용, 상업주의에 점화되어 우리 사회에 매스미디어를 통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드라마, 가요, 영화, 서적, 주간지 등으로 나날이 번창해 우리 생활을 완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와 같이 건전한 이성과 정서를 좀먹어 정의심을 좀먹는 독소를 방지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교회가 인간의 근원악을 형성하는 정서적 면을 정화시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환언하면 외곡돼 있는 인간감정을 순화시켜 지혜, 용기, 절제가 완전한 조화를 이룩토록 하는 뜻(플라톤)인 정의의 본심을 되찾도록 하는 데 정서적 측면에서 어프로치하여 수십 년 동안 때끼어온 불순문화를 정화해 나가는 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무력한 현대종교
현대에 와서 부단히 또 급속도로 변해 가는 인간세의 제 양태에 대해서 종교가 제동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대로 갖가지 종교 가운데서 가톨릭은 인간성을 침해하는 이데올로기와 싸우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꿋꿋하게 버텨 왔다. 즉 가톨릭교회는 세계가 나쁜 것으로의 진화돼 가는 것을 좌시하고만 있지 않았다고 하겠다.
이제 그와 같은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고유한 한국문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구문화도 아닌 국적 불명의 부평초적 문화의 독소를 해결해 가는데 교회가 선도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리 함으로써 부정부패 부조리를 배태시키는 감령지대를 세척할 수 있게 되고 청쟁한 감정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되찾아 오늘의 인간들이 악의 미망에서 깨도록 하는 것도 진정한 교회의 사회 참여가 될 것이다.
■생활 범위 넓혀야
교회가 문화 정서 순화운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펼 수있다. 즉 언론출판 예술 등 각 분야의 지금까지의 현상 고수 유지를 벗어나 좀 더 사회 속으로 광범위하고 깊숙히 파고들어가 그 활동의 지평을 넓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경우 교회의 기관지가 있다. 그러나 신자가 아닌 경우 그 교회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는 독자가 몇 명이나 되며 신자라 해도 얼마나 읽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서적 출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러 수도회 출판부를 통해 많은 종교 양서가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 빗니자들은 어떤 종류의 책이 나오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신자들에게도 널리 보급되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종교 서적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에 있겠지만 교회가 세인이 관심을 끌고 구독하게끔 적극적인 선전 판매 활동의 부족에 더 큰 원인이 있지 않나 한다. 예술활동의 경우도 더욱 활발한 음악회와 매스콤을 통한 활동 문학회 미전 연극 공연 등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광범한 문화운동을 벌이자면 재정적인 뒷받침과 인적 자원이 문제가 될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더 확대할 수 없다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각 기관의 경영을 합리화 쇄신하고 동력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문화운동이 극히 추상적이고 간접적이긴 하지만 교회가 영신활동을 주무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오늘날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이 길을 생각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더욱 만연돼 가고 있는 사회 병리적 불합리를 방지 축소시키고 근원악을 형성한 제 독소를 치유하는 데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참여도 바람직한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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