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의 아버지가 찾아갔을 때 천 사장은 아직 회사에 있었다. 천 사장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형일의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게』
천 사장은 소파에 앉으려는 형일의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말구 일 봐요』
형일의 아버지도 웃으며 말했다.
천 사장은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형일의 아버지는 탁상 위에 있는 석간신문을 들었다. 일 면에서부터 표제만 골라 읽기 시작했다. 칠 면의 사회 면까지 다 읽고 났을 때
『자 다 됐어』
하며 천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일이 아버지도 따라 일어섰다. 사장실에서 나온 천 사장은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는 젊은 직원에게
『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캐비닛에 넣고 퇴근해요』
하고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간다. 밖에 나서자
『오랜간만인데 한 잔 하지』
천 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
『어딜 간다?』
천 사장은 저고리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깐 생각했다.
『그렇지 좋은 데가 있어!』
하고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형일의 아버지는 천 사장을 찾아간 용건 때문에 머리가 약간 무겁다. 집을 나설 때에는 자신만만했으나 막상 천 사장을 만나고 보니 용건을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큰거리의 십자로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는 골목에 있는「자매」라는 음식점이었다. 형일의 아버지도 몇 달 전에 한 번 다녀간 일이 있는 집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이층 방에서는 집 뒤를 흐르는 넓은 하수도의 물에 양쪽 집들의 불빛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낮에는 악취까지 발산하는 구정물인데도 밤에는 제법 정취까지 풍겨 준다. 형일의 아버지는 맥주 네 병이 끝날 때까지 용건을 꺼내지 못했다. 맥주 몇 병이 더 들어왔을 때에는 얼큰하게 취기가 돌았다. 형일의 아버지는 용기를 냈다. 만약에 천 사장이 청을 받아 주지 않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 집 큰놈은 금년에 6학년이 되는 거지』
하고 형일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이번에 6학년이 되는 거야』
천 사장은 형일이 아버지가 그러한 말을 꺼낸 뜻을 모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야 성진 형의 아들 영호란 놈과 우리집 큰놈은 졸업이야』
『응 같은 반인가?』
『우리집 놈은 중학생이 된다고 벌써부터 야단이야…그런데 내가 자네를 만나려 한 건 다름 아니라 영호 때문에 좀 청이 있어서…』
하고 형일의 아버지는 영호의 중학교 등록금에 대해서 이야기 꺼냈다. 천 사장은 형일의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놈이 신문 배달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난 그때 그놈의 아버지의 친구로서 좀 등한했다는 가책 같은 것도 느꼈어. 그런데 그 놈은 저의 아버지처럼 정신이 살아 있는 놈이야』
천 사장도 형일의 아버지처럼 영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참 훌륭해 모자가 살겠다고 애쓰는 게 장하기도 하고 한편 가엽기도 하구…』
형일의 아버지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자네가 영호네 모자를 잘 돌봐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괜한 소리야 난 집도 가깝고 자주 만나는 것뿐이야』
『영호의 첫 등록금은 내가 맡겠어』
천 사장은 형일의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 주면 참 모자가 얼마나 고마워할지 몰라』
형일의 아버지는 넘치는 기쁨을 얼굴에 담고 말했다. 정말로 천 사장이 고마왔다.
『자네가 바쁜데 또 날 찾아올 것 없이 오늘 아예…』
하며 천 사장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보수 한 장을 형일의 아버지에게 주었다.
『이 사람이 뭘 이렇게 많이…』
형일의 아버지는 놀란 소리로 말했다. 보증수표는 5만 원짜리었다. 형일의 아버지는 어리둥절했다.
『아냐 처음 입학 때에는 등록금이며 다른 준비 때문에 그만큼 필요할 걸세』
『그럴까 그럼 고맙게 받아 전하겠어』
형일의 아버지는 자기가 나선 일이 생각보다는 더 잘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천 사장과 헤어지자 택시를 잡았다.
천 사장을 찾아갔을 때에는 걸어서 갔던 형일의 아버지다. 그러나 술이 취해 간이 커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기쁜 소식을 영호의 어머니에게 빨리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형일의 아버지가 집에 닿은 것은 열 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영호 어머니 아직 계셔?』
하고 기쁜 소리를 질렀다.
『네에』
하며 형일의 어머니가 안방에서 대청으로 나왔다.
『어떻게 잘 됐어요?』
『그럼 잘 됐지!』
형일의 아버지는 호기 있게 말하고서는 껄껄 웃었다.
『정말 미안해서…』
영호 어머니도 대청에 나와 있었다.
『잘 됐어요』
하며 형일의 아버지는 앞서서 안방에 들어가 앉았다.
『영호 어머니 이제 등록금은 걱정 없게 됐어요』
형일의 아버지는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영호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나 이렇게 많은 돈을…』
놀란 소리를 지르는 영호 어머니는 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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