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 들린 자를 낫게 함」(마테오 8장 28-34절 마르꼬 5장 1-20절 루까 8장 26-39절)
색채 소개=그림의 전 배경 중 윗부분은 짙은 고동색이며 노란 색과 흰 색이 약간 섞였고, 아랫부분은 짙은 푸른색이며 그리스도께서 딛고 있는 땅도 같은 색이지만 검정색으로 초목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속옷은 연한 푸른 색이고 겉옷은 붉은 자주색이다. 흑광은 금빛이며 붉은 선과 검정색으로 가장 자리가 그려져 있는데 그 사이에는 흰 점들이 박혀 있는 듯하다.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은 회색빛의 옷을 입고 있으며 바지는 진한 남색이고 장화는 고동색이다.
그의 얼굴과 손은 붉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마귀의 얼굴색과 날개도 역시 붉은 색깔이다. 마귀의 온몸과 손의 색깔은 푸른 색에 가까우며 붉은 색깔이 약간 섞여 있다. <역자 주>
복음 작가들은 마귀 들린 자의 완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 그들 중 마르꼬와 루까는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후,「게라사」땅에 있는 건너편 강에서 그리스도와 만난 마귀 들린 자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마르꼬는 무덤굴에서 뛰쳐나오고 모든 쇠사슬과 얽매임에서 탈출하는 자로, 루까는 벌거숭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양편이 모두「LEGION」이라 부르는 악의 힘과 그 충만을 의미하는 불결한 마귀에 대해서는 동일하다. 그 외에도 이 이름은 적의 수비군을 지키는「로마」의 군사 일치를 가리키며 유대인들이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던 돼지에게 들어가겠다는 마귀의 소망이 허락됨은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러한 암호적인 이야기에서 예수의 완치 기적에는 시간적 역사적인 색채의 배합이 분명한 정치적 메시아적 의미가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게라사」의 마귀 들린 사람을 가리켜 말함에도 불구하고 이 성화에서 여기에 대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배경을 특별히 축소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근본적인 것을 두드러지게 했다. 검고 푸른 색의 절벽인 앞 배경과 그 뒤에 겹쳐 있는 듯한 호수와 창공이 동시에 밝은 푸른 색의 경계선 위에 금빛 배경인 초자연적인 세계의 노란 색과 고동색의 선들! 오른쪽 아래에는 아무렇게나 벌린 채 금빛으로 장식된 가죽신을 신고 서 있는 다리와 무릎까지 오는 남색 바지, 허리에 매어진 주름 잡힌 보라색깔의 치마, 마귀 들린 자의 찌푸린 모습! 그는 뻣뻣해진 손과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으며 그 입에서는 배가 뽈록하고 날개가 달린 마귀가 튀어나오는데 이미 힘을 잃어 그 날개를 사용하지 못한다.
이 마귀가 곧「LEGION」이고 깊은 곳으로 빠지면서 돼지떼들은 바다로 몰려 빠지게 반항을 시도한 것이다. 마귀 들린 자는 눈을 크게 뜨고 있으나 시선은 마귀에게 쏠리지 않고 있다. 그 눈은 이미 치료되고 해방된 눈이며, 경이와 감사가 넘치어 마귀의 종살이에서부터 해방시켜 준 자를 찾고 있다. 그 사람 앞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맨발로 절벽을 걸어가시는 분, 비교가 안 되리 만큼 그시고 강하신 분, 곧 마귀 들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마귀가『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아들 예수여 왜 나를 간섭합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마르꼬 5장 7절)하고 반항하면서 고백한 바로 그 분이 서 계신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자세 즉 창조적인 전능과 그 인자와 무능한 피조물에게 동정을 베푸시며 강복하는 오른손의 모습은 이제 추악한 마귀의 일그러진 상이 추방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비유를 다시금 새롭게 해줄 것이다.
아주 정확하게 양편의 두 눈동자 사이에 강복하려고 높이 쳐든 두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구세주의 눈과 치유된 자의 눈이 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주고받음을 알 수 있고 그가 주님께『주님과 같이 다니게 해주시기를』간청하는(루까 8장 38절) 말을 듣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청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승락되었다. 즉 주님은 그에게 보다 더 큰 사명을 맡기기 위해서『집으로 돌아가서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일을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마귀가 거처한 바 있는 그를 친구와 증거자로 만들었다.
화가는 사소한 것들을 생략함으로써 근본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니 이 그림은 곧 전파이고 직접적인 부름이며 상봉인 것이다. 왜냐하면「게라사」의 이 역사적 사건은 개개인을 가리키며 또한 각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마귀 들린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을 도우며 구원자로 상봉하여 그를 악의 세력에서 구출하시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친구와 하느님의 업적의 증거자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주께서도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성부께로부터 높이 올림을 받으심으로써 교회 안에서『세상이 끝날 때까지 항상』(마테오 28장 20절)시간을 초월하여 현존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外誌에서〉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