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 비가 내릴 것 같이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언덕의 높은 동네에는 가끔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온다.
학교에서 돌아온 형일이 형철이 유미는 이미 동네에나가 한바탕 놀고 들어왔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고 오기는 했으나 배가 고팠다.
이제 저녁밥은 먹을 때인데도 그동안을 참지 못해 찬밥을 정신없이 퍼 먹는다.
『저녁을 먹을 텐데 조금씩 먹어라』아이들 양말을 꿰매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난 조금만 먹었어』
유미가 응석을 부리듯 말하며 숟가락을 놓고 대청으로 나갔다.
『오빠 새가 들어왔어!』
유미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새가?』
형일이와 형철이가 와당탕 대청으로 나갔다. 유미가 가리키는 아버지의 서가 위에는 아닌 게 아니라 한 마리의 잉꼬가 앉아 있었다.
형일은 얼른 열려 있는 대청문을 와락 닫았다.
『엄마 잉꼬가 들어왔어』
형철이가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
『잉꼬가?』
어머니도 대청에 나왔다.
『정말 잉꼬구나』
형철이가 서가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형철아 안 돼!』
『왜 문 닫았잖아』
『그래도 안 돼』
형철은 되돌아와 섰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어머니가 잉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 나광에 가서 새장 갖고 올게』
하고 대청문을 열려고 했다.
『안 돼 가만 있어』잉꼬는 움직이지도 않고 또 울지도 않는다. 무엇인가 살피는 것처럼 고개를 자꾸만 이리저리 돌린다.
『얘들아 이 동네에 잉꼬를 기르는 집 있니?』
어미니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 동네엔 잉꼬를 기르는 집이 없어』
형일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럼 어디서 날아왔지?』
『그래 말야』
형일이가 고개를 갸우뚱 생각하는 표정이다.
『우리집에 들어왔으니깐 우리가 기르면 돼』
형철은 저희집에 들어온 새니깐 당연히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철은 참새들을 날려보낸 것을 가끔 아쉽게 생각했으며 또 그때 형일이가 비둘기를 기르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비둘기를 기를 눈치도 안 보이는 것이 좀 불만이기도 했다.
『엄마 임자를 찾아 주지 말고 우리가 길러』
형철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잉꼬는 아름답고 탐이 난다.
『어디서 왔을까?』
형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 동네엔 잉꼬를 기르는 집이 없어』
형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잉꼬가 있는 집이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 우리 길러!』
형철이가 또 말한다.
『기르는 건 좋지만 잉꼬는 한 마리는 못 길러』
『엄마 왜?』
형일이가 묻는다.
『잉꼬는 두 마리가 함께 있어야 살아 한 마리만을 기르면 곧 죽고 말아요』
형일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언제인가 누구에게서 어머니와 같은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응 엄마 그래 나도 들었어』
『엄마 우리가 기르면 되잖아』
형철은 잉꼬를 꼭 기르고 싶다.
『안 된단 말야 잉꼬는 한 마리는 못 기른단 말야』
하고 형일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엄마 그럼 날려 보낼까?』
형일이가 말했다.
『날려 보내도 곧 죽을 걸 더군다나 비가 당장에 쏟아질 텐데 잉꼬는 참새처럼 바깥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새가 아냐』
잉꼬는 혼자서는 살 수도 없고 또 날려 보냈자 당장에 죽는다는 어머니의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형일은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기는 하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가엾기만 한 일이다.
서가의 책 위에 앉아 있는 잉꼬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며 무엇인가 살핀다. 그것은 이때가지 함께 살아온 또 한 마리의 잉꼬를 찾는 것 같이 형일은 생각되었다. 양철로 된 챙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비가 쫙 내리부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잉꼬를 날려 보낼 수는 더욱 없게 되었다.
『얘들아 좋은 수가 있다』
어머니가 불쑥 말했다.
『엄마 뭐?』
형철이가 어머니 앞에가서 말했다.
『어제 시장에서 큰댁 아줌마를 만났는데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잉꼬 한 마리가 갑자기 죽고 또 남은 한 마리도 시들시들해서 할아버지가 여간 걱정이 아니시라구 하더라. 그래 큰댁에 보내자!』
『엄마 큰댁의 잉꼬가?』
형철이는 뜻 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응…』
『엄마 그럼 저 잉꼬도 살고 또 큰댁 잉꼬도 살 수 있게 큰댁에 갖다 주는 게 좋아』
형일이가 기쁜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형철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기르고 싶다.
『엄마 한 마리로 안 되면 한 마리는 새집에서 사 오면 되잖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듯이 형철은 약간 으시대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큰댁 잉꼬 때문에 할아버가 걱정하신다잖아』
형철은 말없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표정이다.
잉꼬는 여전히 무엇인가 찾는 것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뿐 울지도 않는다. 형일은 잉꼬가 몹시 불안해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만 한다.
바깥은 비가 여름처럼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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