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처음보다 더욱 세차게 내린다.
『그럼 엄마 할아버지께 드릴까?』
한참 생각하고 난 형철이가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드릴까가 뭐냐, 그래야지!』
어머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 형 비가 와도 가는 거야』
『그럼 가야지 비 오는 것쯤 문제가 돼』
형일이가 우쭐대며 말했다.
『형 어떻게 갖고 가?』
『상자에 넣으면 되지 뭐』
『공기가 안 들어간단 말이야.』
『병신, 참새 갖고 올 때도 그렇게 했잖아, 구멍을 뚫으면 되잖아』
『아, 그렇지』
형철은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썩썩 긁는다.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형 내게 상자 좋은 것 있어.』하고 형철은 저희 방에 가서 정사각형의 조그마한 종이 상자를 갖고 왔다.
『내가 구멍 뚫을게 형, 참새 붙잡아』
『그래.』
형일은 책상 앞으로 갔다. 발돋음을 하고 손을 내밀자 잉꼬는 푸드득 자리를 옮겼다. 몇 번이나 그랬다.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잉꼬를 붙잡았다.
잉꼬는 상자 속에서 푸드득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들고 가지?』
형일이가 고개를 갸웃뚱했다.
『뭐가 어렵니 노끈을 갖고 십자형으로 묶고 드는 고리만 하면 되잖아』
『아, 그렇지 우리 엄마가 최고야』
형일은 자기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의외로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이 우스워 또 모두 웃었다.
유미가 나이롱 끈을 가져왔다.
『자, 오빠』하고 형일이에게 내밀었다.
『이럴 때는 유미도 제법이구나.』
『아, 유미가 언제는 안 그랬니』
어머니가 유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비가 와서 어떻게 가지?』
어머니가 약간 걱정되는 듯이 말했다.
『엄마, 괜찮아.』
이러한 경우에는 형일이보다 형철이가 실속 없이 뽐내기를 잘한다.
『버스를 타고 가라!』
어머니가 대문을 나서는 형제에게 말했다.
『응』
아이들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단 비닐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스럽다. 잉꼬가 들어 있는 상자는 형일이가 들고 있다.
『형, 할아버지 좋아하실 거야』
『응』
『형,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아서 돈 주실지도 몰라』
『응』
『형』
『응』
『뭐, 대답이 그래?』
형철의 어른스러운 말투에 형일은 그만 소리를 내고 웃었다. 형철이도 따라 웃었다.
언덕을 다 내려간 형제는 여자중학교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백학동 쪽으로 가는 버스는 좀체로 오지 않는다.
『형, 백학동 버스 고장인 모양이지?』
『그래 말야』
『10분도 더 기다렸단 말야』
『응』
『형, 또 응이야』
『응』
『나, 이제 말안해』
『좋아』
버스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형철아 걸어가!』
『비오는데…』
형철은 더 기다려서라도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다.
『차비 남는 것과 또 할어버지가 수고했다고 돈 주시면 최소한도로 오늘 5백 원은 생긴단 말야』
『야, 5백 원!』
『그럼』
『할아버지가 만약에 돈 안 주시면 잉꼬값을 내라고 하지 뭐』
『응, 그래도 돼』
『그럼 그 돈 뭘 해?』
『비둘기 살 돈을 저금하고 또 종이를 사서 포스타도 만들자』
『형철은 비둘기를 사기 위해 저금을 한단 말에 기분이 좋다.』
『그런데 포스타는 뭔데?』
『두루미를 함부로 잡지 말자는…』
『응…좋아』
큰댁에서 10리 가량 산 속으로 들어간 뒷산에는 두루미가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큰댁이 있는 동네 이름이 백학동인 것이다.
그런데 지각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총질을 하여 잡는다고 얼마 전에도 지방 신문에 크게 보도된 일도 있다. 그 신문을 보고 형일이네 아버지가 몹시 분개한 일이 있다. 그것을 형일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형, 그럼 걸어가!』
『좋아』
형철은 신난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고생스럽지 않을 것이다.
형제는 다시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 가다가 형철이가『형? 잉꼬 왜 소리 없어』하고 우산 아래로 형일을 쳐다보았다.
『잠을 잘 거야』
『형 아무래도 이상해』하고 형철은 형일에게로 다가서면서 상자에 귀를 가까이 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형철의 비닐 우산이 뒤로 벌렁 제껴졌다.
『형!』
형철이가 급한 소리를 질렀다. 형일은 얼른 자기의 우산을 형철에게 주고 형철의 우산을 자고 바람 쪽으로 내밀었다. 우산은 제대로 됐다.
『이래서 국산은 곤란하단 말야』
형철은 아버지가 하던 말을 그대로 흉내를 냈다.
『아쭈!』
형일이가 웃었다.
『잉꼬는 살아 있어 안심해』하고 형일이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걸어갔다. 기차 건널목을 넘어섰을 때 뒤에서 클락숀 소리가『빵』하고 울렸다.
두아이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백학동 쪽으로 가는 버스였다. 형철은 걸어가자고 했으나 막상 버스를 보고 나니 이왕이면 타고 갔으면 하는 얼굴을 했다.
『처음 결심대로 걷는 거야』
형일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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